화웨이 고리로 한 한·미·중 갈등은 윈윈 게임이 아니라 누군가 대가 치러야 하는 싸움
미국과의 동맹을 기초로 자강 꾀하는 건 신냉전 시대에도 유효한 국가전략


화웨이 이슈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선 중국이 5G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미래통신망인 5G는 인공지능 혁명의 대동맥이다. 자율주행자동차,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등이 5G를 만나면서 쑥쑥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열린다. 이 미래를 여는 최첨단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을 제쳤다는 게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지금껏 추격자였던 중국이 선도자(first mover)가 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대국굴기와 중국몽이 허풍이 아닌 셈이다.

미국은 제국주의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사를 풍미했던 패권국들과 다르다. 그러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점은 같다. 타국이 ‘착한 동생’으로 남아 있을 때는 부드러운 형이 되지만 ‘넘버 원’이 되려고 하거나 자신을 위협할 때는 반드시 응징한다. 미국은 소련을 냉전 40년 만에 붕괴로 이끌었고, 미국 경제를 넘보던 80년대 일본을 엔고 압력으로 장기 복합 불황에 내몰았다. 테러리즘과 집요하게 싸워 이라크와 알카에다, IS 등을 무너뜨렸다.

미국의 ‘중국 다루기’는 반테러 전쟁 이후의 국가전략이다. 긴 호흡의 전략이다. 시장의 많은 전문가들은 무역전쟁을 계속하면 미국 역시 피를 흘릴 수밖에 없고,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이 무리하기 어렵다는 예상 때문에 적당한 타협을 예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싸움의 본질이 패권 경쟁임을 잠시 잊은 기대였다. 대충 타협하는 것은 미국의 신 국가전략이 아니다. 격투기 경기처럼 자신이 피를 흘리더라도 상대를 제압하는 경기를 미국은 지금 벌이고 있다.

패권 경쟁은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소프트파워의 복합 경쟁이다. 그런 면에서 화웨이는 1석3조의 효과를 노리는 표적으로서 적합하다. 첫째, 중국 경제의 예봉을 꺾는다. 둘째, 안보 위협을 저지한다. 셋째, 패권국의 도덕적 원칙과 자격을 재확인한다. 5G 1위 국가라 하지만 화웨이의 핵심 기술은 여전히 미국 영국 등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 설계를 제공하는 ARM을 비롯해 구글 인텔 퀄컴 등이 동참하고 운영체제와 와이파이, 소형저장장치(SD)까지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화웨이는 껍데기만 남을 수 있다. 이 싸움 뒤에는 정보 전쟁이 있다. 미국이 동맹국들의 도움을 받아 통신망을 감시해왔다는 것은 ‘알려진 비밀’이다. 신세대 5G 네트워크를 중국이 주도하고 백도어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을 미국은 결정적 안보 위협으로 간주한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굴기를 기술 도둑질 위에 세워 올린 바벨탑으로 규정한다. 미국의 언론들은 연일 화웨이의 기술 절취 사례들을 보도한다. 매뉴얼의 오자까지 똑같이 베낀 사례부터 수많은 중국판 제임스 본드 사례들이 쏟아진다. 이런 화웨이를 인정하는 것은 자유와 재산권을 보편적 가치로 내세우는 미국의 도덕적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요즘 국내 정치에서는 한국과 비슷한 정쟁을 보여주는 미국 정치가 이 사안만큼은 초당적으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친민주당 성향의 기업들도 적극 동참한다. 그것이 ‘미국의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보편적 문명을 주도할 도덕적 원칙을 지키지 못한 나라가 세계를 주도하게 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화웨이를 고리로 한·미·중 갈등은 이제 시작이다. 그것은 ‘윈-윈 게임’이 되기 어렵다. 승부를 내야 하는 싸움이다. 따라서 누구든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한국과 같이 중간에 끼인 나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지 않는 방법은 깊이 숨거나 이길 고래 뒤에 붙는 것이다. 그런데 이리 가면 경찰서고 저리 가면 파출소인 상황에서 숨고 싶지만 숨을 곳이 없다. 결국 전략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경제 보복이 무섭다고 미국에 등을 돌릴 수 있을까. 인도·태평양 전략에도 참여하지 않고 이 사안까지 동참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한국을 동맹으로 여길까. 미국의 우방들이 앞다퉈 동참하고 있는 이유도 결국 무엇이 국가 이익에 더 부합하는가에 대한 전략적 선택의 결과다.

북핵 문제가 처리되는 과정에서 한반도 질서가 요동칠 개연성이 높고 경제마저 하강하는 우리로서는 중국의 보복도 피하고 싶지만 그보다 절실한 것은 미국과의 협력이다. 사드와 이 사안이 다른 점은 사드가 양자 간 문제지만 화웨이 사안은 국제적 공조의 흐름을 타고 있다는 점이다. 보복의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5G 세계 2위 국가인 한국에는 기회의 요소도 있다. 이쯤에서 세계 질서의 지각변동을 헤쳐나갈 기본적인 국가전략을 재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전략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숙명적으로 확립된 것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기초로 자강을 꾀하는 전략은 미·소 냉전에 이은 제2의 신냉전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점에서 일본은 선명하다. 한국은 어정쩡하다. 지나친 눈치보기는 양쪽에서 다 두들겨맞는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박형준(동아대 교수·전 국회사무총장)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