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용어 중에 기술적 부채(technical debt)라는 표현이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 같은 과정에서 지금 당장 해두지 않아도 되거나, 당장은 편리한 해법이라는 이유로, 당장은 안 해도 별 차이가 없는 작업들을 지칭하는데 이후 파생된 결과가 부채로 되는 개념까지 포함한다. 나중에 결함을 개선하기 위해선 작업 비용이 훨씬 더 들어가고, 빨리 해소하지 않으면 금융 부채처럼 점점 더 커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유이든지 간에 지금 대충 일을 처리해 놓으면 이자가 불어나듯이 나중에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은유적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비단 IT 분야에서만 통용되는 말은 아니겠다. 금융 부채도 잘 쓰면 크나큰 도움이 된다. 은행 돈으로 유동성을 확보한 뒤 투자·개발에 성공하면 거대한 부를 일굴 수도 있다. 그런데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나중에 어떻게 되든지 간에 지금 편한 방식으로, 단기적 성과만 따지거나 또는 잘못된 판단으로 결정했다간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기술적 부채의 대표적인 특징은 빌린 사람과 갚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빌린 사람이다. 그가 기술적 부채에 해당하는 작업을 게을리했거나 안 했거나 몰라서 못 했다면, 이를 유지·보수·관리하는 이가 갚아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사용자가 그 대가(돈이면 돈, 시간이면 시간)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니 사고 친 자와 비용 지불하는 자가 다른 것이다. 어떤 새로운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마무리했을 때 매뉴얼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뒤에 다른 이들이 또 시간과 돈을 들여 처음부터 해야 한다. 쓸데없는 빚을 지게끔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러면 진전·개선·개발에 심각한 장애가 생긴다.

국가정책도 마찬가지다. 여권은 이익집단 반발에 막혀 각종 규제개혁을 당장 편하고 쉬운 방식으로 땜질한다. 노동개혁은 최우선순위 과제인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힘이 센 지지층 민노총이 윽박지르니 현 정권은 기술적 부채를 키우면서 정작 근본 해결책은 피해만 간다. 보수 야당은 오로지 반사이익을 위해 국회는 나 몰라라 하고 전국을 돌며 증오만 부추긴다. 정치가 제대로 안 돌아가니 나중에 국민이 해결하고 갚아야 할 부채는 엄청나게 늘어만 간다. 아, 정치하는 자들이 저지르는 이 국가적인 기술적 부채를 나중에 어찌 감당할꼬….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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