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전남 광양시 광양제철초등학교 내에 설치된 마로니에 돌봄센터의 3반 어린이들이 윷놀이를 하고 있다. 허공에 던져진 윷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어린이들의 눈길이 사뭇 진지하다.

‘아이 양육하기 좋은 도시’를 표방하고 나선 전남 광양시는 이를 위해 전국 최초로 어린이 보육재단을 설립했다. 법·제도 안에서 찾아내기 힘든 보육환경 사각지대를 발굴해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을 마음 놓고 맡기고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어야 삶의 질이 높아지며 그래야 전국에서 아이를 가장 잘 키울 수 있는 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정현복 광양시장의 지론이 배경이 됐다.

아이들의 행복한 오후, 광양 돌봄센터

지난 25일 오후 3시쯤 전남 광양시 금호동에 위치한 광양제철초등학교 내 마로니에 돌봄센터. 센터에 들어서자 3개 반에서 터져 나오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 돌봄 3반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삼삼오오 모여 놀이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 개, 걸, 윷, 모… 모 나와라!”

9살 동갑내기 화연이가 힘차게 외치며 허공으로 윷을 던지자 (윷)말을 놓는 나윤이가 상대 팀의 말을 치우며 환호를 질렀다. 말을 잡힌 지환이는 자신의 말을 들고 연신 “어휴, 어휴…”라고 한숨을 쉬며 서운해 했다.

옆에서는 한 살 어린 가온이가 선생님과 체스를 하고 있었다. 윷놀이 대신 선생님을 졸라 체스 상대로 앉힌 것이다. 돌봄교사인 이기쁨(31) 선생님은 “잘하네. 선생님이 못 이기겠네”라며 게임 내내 칭찬을 했다.

옆 교실 돌봄활동실로 가보니 아이들 10여명이 피구게임을 하고 있었다. 양편으로 나눠 공을 던지고 피하려고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신나게 뛰어다녔다. 이어 짐볼을 탄 채 공을 주고받으며 즐거워했다. 이기쁨 교사는 “하루 8시간 함께하는 아이들과 즐겁게 지내려 노력하고 있다”며 “아이들이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배우고, 깨우쳐가는 과정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신명옥(49) 마로니에 돌봄센터장은 “아이들이 함께 뛰어놀고, 독서하고, 수업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면서 “학부모들이 아이를 데리러 왔을 때 아이들이 ‘돌봄 짱!’이라며 엄지를 치켜 세워줄 때는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신 센터장은 “다만 센터에 아이들을 맡기려고 대기하는 이들이 많은데 전부 맡아 줄 수가 없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학교시설을 리모델링한 마로니에 돌봄센터는 돌봄실과 돌봄활동실, 역사관, 도서관 등을 갖추고 있다. 학교 교장이 교사들과 의논해 방과 후 맡길 곳이 없는 저학년 학생들과 학부모를 위해 돌봄센터를 만든 것이다.

이곳에는 총 80명의 아이들이 방과 후 친구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행복한 오후를 보내고 있다. 신 센터장은 “직장을 마치고 데리러 오는 부모에게 ‘(더 놀고 싶어) 집에 가기 싫다’며 떼를 쓰는 아이들도 있다”며 “돌봄선생과 학부모는 매일 행복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귀띔했다.

임종현(59) 광양제철초등학교장은 “마로니에는 학부모가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면서 “최고의 시설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의 방과 후를 책임질 수 있는 최고의 돌봄센터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광양시에는 이 같은 돌봄센터가 두 곳 더 있다. 센터는 맞벌이 가정이나 다자녀 가정 등 부모의 돌봄을 대신해 방과 후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을 맡고 있다. 학기 중은 물론 방학 중에도 운영하며 연중 부모 대신 아이들의 오후를 책임진다.

센터는 부모와 아이들의 선택 일정을 고려해 시간제로 운영한다. 등·하원 지원은 물론 간식 지원과 자녀의 돌봄 관련 상담도 펼치고 있다. 아이들은 센터의 돌봄교사를 통해 숙제를 하는 것은 물론 위생청결교육과 안전교육도 받는다. 독서지도를 통해 읽기와 말하기, 이해력도 높이고 예체능과 다양한 체험활동도 갖는다. 광양시는 조만간 광영동 등 2곳에 추가로 돌봄센터를 운영할 예정이다.


전국 최초 민·관 협력 어린이보육재단

광양시는 2017년 6월 전국 최초로 민·관이 협력해 어린이보육재단을 설립했다. 광양시가 2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재단의 기금은 현재 32억원까지 모아졌다. 2년 동안 광양시가 15억원을 출연했고 나머지 17억원은 기업과 공무원, 시민, 단체 등이 자발적으로 기부에 동참하면서 조성됐다.

재단은 출범 첫해 시작한 광양형 방과 후 돌봄 어린이집 운영, 어린이집 대체 보육교사 지원사업, 발달장애 아동 조기 발견 지원 사업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2018년에는 갇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통학 차량내 단말기를 통해 아이의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띵동카’를 관내 어린이통학버스로 등록된 180여대의 차량에 설치했다. 전국 최초로 실시한 띵동카 설치 지원사업은 정부 인사혁신처 주관으로 열린 제3회 적극행정 우수 사례 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정부 사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재단은 또 질병으로 인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가지 못하는 아이에게 돌보미를 파견해 본인 부담금 전액을 지원함으로써 맞벌이 가정의 양육 부담을 해소해주는 ‘질병감염 아동 무료 돌봄서비스 사업’도 펼치고 있다.

다자녀 및 저소득아동의 특별활동비 및 현장학습비를 지원하고 갓 태어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를 안심하게 맡길 수 있는 ‘광양형 0·1세 아이 전용 어린이집’도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도 어린이집 대체 보육교직원을 지원하는 한편 관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사용 중인 장난감 및 교구를 정기적으로 세척·소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황재우 광양시 어린이보육재단 이사장은 “부모는 믿고 맡기고, 보육 교직원은 보람을 느끼며, 아이들은 더 행복할 수 있는 보육환경을 구축해 나가기 위해 어린이보육재단을 설립하게 됐다”면서 “올해로 3년차인 재단은 시민들을 위하고, 시민들이 원하는 보육사업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너와 나의 아이가 아닌 우리 모두의 아이’로 키울 수 있는 최고의 보육환경을 조성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정현복 전남 광양시장

▒ 정현복 광양시장 “최고의 양육 환경 만들려 보육재단 세웠죠”

“광양시 모든 가족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행복 공동체 광양’을 만들어 가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정현복 전남 광양시장은 27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14년 기준 우리 시 평균 연령은 36.8세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젊은 도시”라며 “그렇지만 많은 부부들은 현실적인 양육비 부담과 양육 환경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아이 양육하기 좋은 도시’ 추진의 배경을 밝혔다.

정 시장은 이어 임신부터 출산·양육·교육까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그간의 노력을 설명했다. 그는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도시 환경을 아동친화적으로 만들고 아이를 키우는데 지역이 함께 나서야한다는 생각으로 ‘광양시 어린이 보육재단’을 설립하게 됐다”면서 “보육재단은 정부나 자치단체가 법·제도 안에서 해결하기 힘든 보육환경 사각지대를 발굴해 지역 어린이들이 건강한 환경 속에서 커나갈 수 있도록 보육 인프라 조성, 질 높은 보육서비스를 지원한다”고 말했다.

정 시장은 이어 “지난 5년 동안 126개 과제를 설정하고 예산을 집중 투자한 결과 광양시는 출산과 양육 분야를 선도하는 도시로 발돋움했다”면서 “행복한 보육도시 기반을 더 확고히 구축하고 어린이 보육 정책의 선도 도시로 도약할 수 있도록 6개의 신규사업을 포함해 15개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광양시는 최고의 양육 환경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신생아 양육비는 전국 최고 수준인 500만~20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산후 조리비용은 최대 140만원까지 지원하고 둘째아 이상 출산 가정에 행복쿠폰 100만원 지원, 산후조리서비스 모든 가정 확대 등도 시행 중이다.

부모들의 교육비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100원 시내버스’ 혜택을 초등학생에서 중학생과 고등학생으로까지 확대했다. 초등학교 입학생에게는 학용품 구입비, 중학교 입학생에게는 교복비 전액을 지원했다. 교복비 지원은 내년엔 고등학교 입학생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전남 최초로 모든 보육 교직원들에게 명절 휴가비(20만원)를 지급한 것은 물론 대체보육교사 지원과 복리후생비 단가 일원화 등 보육시설 종사자 처우 개선에도 적극적이다. 정 시장은 “낮은 출산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 사회가 함께 나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앞으로도 양육비와 교육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지원 체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광양=글·사진 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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