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여운학 (17) 새신자 교육에 열정… 매주 우편엽서로 인사

통신교육엽서 12장 세트 샘플 제작… 교회마다 몇백 세트씩 주문 쇄도

규장문화사 설립자인 여운학 장로가 1982년부터 보급한 새신자통신교육엽서와 전도편지. 여 장로는 150가지 엽서를 만들어 한국교회의 전도활동을 도왔다.

1976년 나는 한국교회의 새신자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3개월간 서울 성일교회 새신자반 교육을 받으면서 확신한 것이었다. 기도 중에 주께서 지혜를 주셨다.

‘새로 등록한 새신자에게 매주 주말 받아볼 수 있도록 우편엽서를 12주 동안 발송해보자. 키포인트는 엽서 인쇄 내용에 있다. 몇 가지 원칙을 지키자. 짧고 인정이 어린 성실한 구어체로 인사, 안부, 교육하고자 하는 내용을 쓰자. 다만 가르치려는 자세가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여백을 두어서 거기에 담임목사가 친필 사인을 정중하게 한다. 요즘은 우편물 대부분이 생활정보지다. 거기에 비록 낯선 사람이지만 정중한 자세로 문안이나 신선한 배움의 정보가 있는 엽서를 받는다면 부담스럽거나 싫은 마음은 들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만든 샘플을 직원들에게 보여주며 반응을 살폈다. 편집사원이나 경리사원이 그런 샘플에 감동할 이유가 없는 줄 알았다. 행여나 내 진심을 이해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보여줬다. “네, 뭐 좋네요.”

흥분하며 설명했지만 아무도 ‘아이디어가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집으로 가져가 다섯 아들에게 보이며 열심히 설명했다. “아버지, 이게 뭡니까.” 실망스럽게도 초·중·고등학생 아들 중에 한 아이도 감동의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실망하고 있을 때였다. 전무 직책을 맡던 성철호 형제가 달려왔다. “장로님, 저의 동기 전도사들이 오늘 모이기로 했습니다. 그 샘플을 주시면 제가 가져가 반응을 살펴보겠습니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새신자통신교육엽서 샘플 12장 세트를 줬다. 이튿날 내가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성 전무는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장로님, 기뻐하십시요. 제 친구 전도사들이 한결같이 인쇄물이 나오면 당장 자기 교회에서 몇백 세트씩 주문하겠답니다.”

그제야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았다. 당장 인쇄 제작에 착수했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교회마다 몇백 세트씩 주문이 쇄도했다. 새신자통신교육 12장 한 세트를 담은 예쁜 봉투와 새신자통신교육 엽서의 인쇄 제작, 발송에 손이 모자랄 정도였다.

1988년 기도 중에 담대한 마음이 생겼다. 3박4일간의 ‘새신자교육 세미나’를 열기로 한 것이다. 강의는 새신자통신교육 엽서를 개발한 내가 맡기로 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밤 8시부터 10시까지 가르치기로 했다.

중간에는 그동안 500명분, 1500명분의 통신카드를 주문한 경험이 있는 목사님 두 분의 간증 시간이 있었다. 300명은 참석하리라는 확신으로 서울 종로5가 여전도회관에 숙박비와 300석 세미나실까지 5개월 전에 예약했다. 2개월이 지나자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100명밖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200명분의 숙박료를 물어줘야 하는데….’

예레미야 33장 3절 말씀을 되뇌면서 처음 믿음을 지키려 했다. 3개월이 지나자 더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영업책임자를 불렀다.

“참석자가 적게 올 것 같아. 재계약을 해보라고. 300명 예약을 100명 예약으로 바꿔 달라고 사정해보게.” “여전도회 측에서는 이미 다른 예약신청도 사절해놓고 있다면서 절대 안 된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해 보게.” 사탄이 내 마음에 불안을 심어놓기 시작했다.

담당 직원이 통사정한 끝에 150명 예약으로 수정했다. 날짜가 가까울수록 불안감은 더 커졌다. 그런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날 아침 일찍부터 참석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300석이 꽉 차고서야 등록이 멈췄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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