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개봉한 영화 ‘태양은 가득히’는 오늘의 알랭 들롱을 있게 한 명작이다. 이 해 크게 히트한 이 영화는 미국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955년 작 연작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가 원작이다. 알랭 들롱은 이 영화에서 주인공 톰 리플리 역을 맡았다. 대개 주인공 하면 착한 사람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리플리는 악인이다. 그것도 아주 악질적인.

고아로 자란 20대 중반의 리플리는 절도와 남 흉내 내는 게 특기다. 양심의 가책은 남의 얘기다. 그는 신분 상승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밥 먹듯하고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이후 실제로 유사한 사례가 자주 일어나면서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허구의 세계에 갇혀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일컫는 용어다. 이 영화는 1999년 맷 데이먼,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할리우드 판 태양은 가득히 ‘리플리’로 재탄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정아 학력 위조사건으로 사회가 시끄러웠을 때 리플리 증후군이 회자된 적이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명 영어강사, 연예인 등의 학력 위조 사실이 줄줄이 드러나면서 실력보다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 풍토가 도마에 올랐다. 신정아 사건을 모티브로 한 TV 드라마 ‘미스 리플리’도 만들어졌다.

알랭 들롱은 명배우임에 틀림없지만 상과는 인연이 별로 없다. 1995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명예황금곰상을 제외하면 내세울 이렇다 할 수상경력이 없다. 그런 그가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올 칸국제영화제에서 명예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그는 “내가 유일하게 이 세상에서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배우 경력”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대배우의 연륜이 느껴진다.

얼마 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알랭 들롱의 수상 소식을 듣고 “문재인정부가 딱 생각났다”고 했다. 문재인정부가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고 계속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리플리 증후군이 떠올랐다는 거다. ‘봉준호→알랭 들롱→리플리 증후군→문재인정부’로 이어지는 논리구조다. 범인(凡人)은 상상하기 참 어려운 연상법이다. 보통사람은 ‘봉준호→한국영화의 경사→기생충 보러 가자→제2의 봉준호’를 연상할 법한데. 영화계에선 “잔칫집에 상복 입고 와서 곡하는 격”이라고 비판이 거세다. 나 원내대표는 기생충을 볼까?

이흥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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