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단열재를 만드는 창업 3년차 스타트업의 대표 배모(42)씨는 올해 초 시중은행에서 1억5000만원 상당의 지식재산권(IP)으로 담보대출을 받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은행으로부터 “IP가치평가액과 기업등급이 너무 낮아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배씨는 “기준이 너무 높다보니 우량기업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스타트업에 자금을 수혈해주자는 취지로 출발한 IP금융이 엄격한 자격요건 때문에 되레 스타트업을 외면하고 있다. IP금융이란 은행에서 IP가치평가기관에 의뢰해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 IP담보대출, 보증기관에서 보증서를 발행한 기업에 대출하는 IP보증, 증권사나 자산운용사가 직접 투자하는 IP투자를 포괄하는 용어다. 전문가들은 은행에 쏠린 IP금융 부담을 증권사와 기관운용사가 나눠갖고, 금융·투자기관도 자체적으로 IP가치평가를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일부 시중은행에서 IP담보대출을 받으려면 IP가치평가액이 최소 5억원을 넘어야 한다. 가치평가액 기준이 없는 은행의 경우 자체 대출신용심사에서 ‘BBB 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매출이 없어 신용등급이 낮은 스타트업은 대출을 받을 방법이 없는 셈이다. IP보증도 ‘그림의 떡’이다. 보증기관들도 외부평가기관에 IP가치평가를 의뢰하고 있어 IP담보대출과 별 차이가 없다. 한 IP가치평가기관 관계자는 “실사를 나가면 특허기술이 적용된 제품이 실제 얼마의 매출액을 내고 있는지를 따져볼 수밖에 없다”며 “변리사뿐만 아니라 회계사가 실사팀에 포함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IP투자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은행에 쏠린 부담을 대형 증권사 및 자산운용사가 분담하자는 것이다. 이지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이 IP를 기관투자가에 매각한 다음 IP 사용료를 주기적으로 받으면서 목표자금을 채우면 되사는 ‘SLB(Sale&Lease-back)’나 ‘채권담보부증권(P-CBO)’ 등 다양한 IP투자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P-CBO란 여러 스타트업이 회사채를 발행해 만든 ‘풀(Pool)’을 증권사가 모두 사들여 특수목적법인회사(SPC)에 매각하면, SPC가 유동화증권을 발행해 투자자를 모집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상품이다.

정부 입김이 아닌 새로운 투자처로서 IP금융을 바라보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최철 한국외대 법학교수는 “경기 침체로 마땅한 투자처가 사라지는 마당에 급격히 성장하는 IP금융 시장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며 “금융·투자기관도 IP가치를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 IP투자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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