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왕세자 부부가 방한했다는 뉴스를 듣고는 옛 사진첩을 꺼내보았다. 함께 보던 남편이 “여기서도 찍었네” 하며 사진 한 장을 건넨다. 코펜하겐 시청 광장에 있는 안데르센 동상 앞에서 찍은 독사진이었다. 들여다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동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안데르센, 그의 나라 덴마크에서 잠시 지낸 적이 있는데 그때는 내가 동화를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어릴 때 사촌들에게 종종 주워온 아이라는 놀림을 받곤 했다. 동네 개천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것이었다. 반신반의하다 진짜로 믿게 된 건 이웃이 인사차 건넨 말 때문이었다. “딸이 엄마랑 하나도 안 닮았네.” 그날 혼자 방에 틀어박혀 미지의 친엄마를 상상하며 그리워하기도 원망하기도 했다. 그 무렵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일단 들여놓고 보던 빨간색 표지의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이 우리 집에도 있었다. 오십 권을 골고루 보기보다 마음에 든 책을 반복해서 보는 편이었는데 안데르센의 ‘미운오리새끼’도 자주 손이 가던 책이었다. 아마도 무리에서 소외되어 구박받는 오리새끼와 주워왔다고 놀림 받는 나를 동일시했던 것 같다. 그게 짓궂은 장난임을 눈치챈 건 학교 친구들을 통해서였다. 친구들도 한 번씩 비슷한 놀림을 받은 적이 있다는 걸 알고 비로소 불안에서 벗어나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은 덴마크의 오덴세에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교에 갈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그는 열네 살에 배우의 꿈을 품고 코펜하겐으로 간다. 평균보다 큰 키와 깡마른 외모 때문에 극단에서 홀대받다 결국 배우의 꿈을 접는다. 배우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 덕에 작가의 길이 열렸으니 우리는 그를 홀대한 예술 감독에 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괄시받던 새끼오리가 백조가 되는 이야기는 그의 삶과 닮아 있다. 그가 눈물겨운 고난을 겪지 못했다면 미운오리새끼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올해는 소년 안데르센이 부푼 꿈을 안고 코펜하겐에 입성한 지 20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이를 기념하는 전시회도 열렸다고 하니 한 번 가봐야겠다. 세상의 미운 오리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한 안데르센을 다시 만날 수 있다니 고맙고 반갑다.

최주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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