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준 엔젤스파이팅챔피언십(AFC) 대표가 지난 28일 서울 강남구 AFC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 대표는 국내 격투기 시장이 커져 파이터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아지고, 스포츠를 통해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하기를 희망했다. 윤성호 기자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파이터들이 꾸준히 설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엔젤스파이팅챔피언십(AFC)은 2016년 출범한 국내 유일의 자선격투기단체다. 이름 그대로 대회가 끝날 때마다 수익금 일부를 기부한다. 출범 당시 삼성서울병원, 밀알복지재단과 협약을 맺은 AFC는 2017년부터 대전료, 입장료 등 수익금 일부를 어려운 이웃들에게 건네주고 있다. 희귀난치병 환아, 저소득취약계층 가정 등 총 28명의 어린이들에게 치료비와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 중 21명의 희귀난치병 환아는 한 명당 500만원씩을 받았다. 현재까지 총 기부액은 1억5000만원으로 대회당 평균 1050만원 꼴이다.

박호준(왼쪽) 엔젤스파이팅챔피언십(AFC) 대표가 2016년 11월 AFC 1회 기금 전달식에서 권오정 삼성서울병원장을 만나 희귀난치병 환아들을 위한 치료비를 전달하고 있다. AFC 제공

AFC 대표는 1980년대 중반 미용업계에 뛰어든 국내 최고의 베테랑 헤어 디자이너 박호준(51)씨다. 그는 97년 세계 최초로 헤어 퍼포먼스(헤어 쇼)를 연출했고 2000년대 중후반 ‘샤기 컷(머리카락 끝을 뾰족하게 자르는 헤어스타일)’ 열풍을 주도한 ‘미용업계의 대부’다.

헤어 디자이너와 격투기단체장은 좀처럼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다. 여기에 ‘자선’까지 붙었다. 마치 해독하기 힘든 난수표 같다. 지난 28일 서울 강남구 AFC 사무실에서 만난 박 대표에게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게 됐냐”고 묻자 그런 질문에 익숙한 듯 싱긋 웃었다.

“중학생 때부터 아마추어 복싱을 해서 격투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제가 직접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주목받지 못한 채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파이터들을 알게 되면서 돕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여기에 “원래 수익이 생기면 남을 도와야 한다는 가치관이 있었다. 억세고 강한 이미지의 격투기에 자선의 옷을 입히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AFC를 세웠다”고 자선 활동까지 잇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 박 대표는 기부와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추구해 왔다.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누비며 헤어 쇼를 선보일 때도 소아암 어린이 환자를 돕고자 수익금 일부를 기부했다. 인도 어린이들에게는 교육의 공간인 국제교회 설립에도 다섯 차례나 발벗고 나섰다.

지난해 3월 서울 강서구 KBS 아레나홀 특설 케이지에서 펼쳐진 AFC 06 대회 전경. AFC 제공

하지만 AFC 출범 후 정착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국내 격투기 팬층은 얕고, 유료 입장권 판매 수익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대회 초반에는 초대권이 더 많았다. 수익이 없으니 사비를 수시로 털기 일쑤였다. 대회를 한 번 치르면 수억씩 적자가 나서 미용실 가맹점도 수십 군데를 정리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사실 대회에 이렇게 많은 돈이 들어갈 줄 몰랐고, 대회 운영 노하우가 부족해 비용이 예상보다 두 배 이상 들 때도 많았다”며 “수익에 관계없이 좋은 뜻에서 해보자는 간절한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져 12회 대회를 맞이했다”고 그동안의 여정을 술회했다.

그의 노력과 순수한 뜻에 조금씩 응답이 왔다. 희귀난치병 어린이의 부모들로부터 감사의 손 편지를 받거나, 설 곳 없던 파이터들이 ‘열심히 해서 더 큰 선수가 되겠다’는 말을 건넸을 때 큰 감동이 밀려왔다. 지난달 8일 펼쳐진 11회 AFC 대회에서 ‘늦깎이 신인’으로 이름을 알린 장현진(28)은 “좋은 무대에 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데뷔가 늦은 만큼 더욱 열심히 해서 올라가겠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런 반응을 접하면 고생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행복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힘을 얻어 대회 개최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최홍만(왼쪽)이 2017년 11월 서울 강서구 KBS 아레나홀 특설 케이지에서 열린 AFC 05 대회에서 우치다 노보루에게 판정승을 거둔 뒤 관중석을 바라보고 있다. AFC 제공

일본입식격투기단체 K-1에서 전성기를 보낸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도 AFC와 인연이 있다. K-1에서 기량 하락과 슬럼프에 빠지다 재기 의지를 다진 곳이 바로 AFC였다. 최홍만은 단순한 격투대회 참여보다 AFC의 취지와 정신에 호응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2017년 11월 이후 두 번째로 6월 10일 서울 강서구 KBS 아레나홀 특설 케이지에서 열리는 12번째 AFC 대회를 치른다. 최홍만은 “AFC를 통해 좋은 일을 많이 하게 됐고, 격투기 발전에 힘써야겠다는 의지가 솟는다”며 “열심히 노력할 테니 많은 격려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박 대표가 헤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인연을 맺은 연예인들의 동참도 이어졌다. 배우 정준호는 출범 당시 AFC 회장으로 활동했다. 배우 이창훈과 유태웅, 개그맨 심현섭은 현재 AFC 고문을 맡고 있다.

AFC 챔피언 벨트와 대회 트로피.

AFC는 격투기 선수들의 안정적인 성장을 대회 수익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 선수와 별도의 소속 계약조차 맺지 않는다. AFC 활동 중 해외격투기단체의 대회 출전도 허락한다. 파이터의 부담을 줄이고 기량 향상을 돕겠다는 박 대표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박 대표는 AFC의 사례처럼 스포츠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고 기부 문화가 조성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하기를 희망했다. 이와 함께 국내 격투기 시장의 발전은 그의 최고 관심 사항이다. “국내 격투기단체 간의 연말 대항전 등 이벤트가 열리면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질 것 같아요. 과거의 복싱, 레슬링처럼 격투기가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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