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8일 서울 강서구 마곡 코오롱원앤온리타워 다목적홀. 매주 열리는 코오롱 임직원 행사에서 이웅열 회장이 검은색 스웨터와 청바지 차림으로 연단에 올랐다. “오늘 제 옷차림이 색다르죠”라고 말문을 연 뒤 A4 용지에 써 온 내용을 읽었다. 전격 사퇴를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별도의 퇴임식도 없었다. 새로운 창업의 길을 가겠다며 63세에 사퇴한 그에게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한데 이제 그 특권도, 책임감도 다 내려놓는다”는 퇴임사 문구는 한동안 회자됐다. 다만 외아들 이규호(35) 전무에게 경영권 승계도 안 된 상태여서 의외의 사퇴라는 반응이 많았다.

이로부터 정확히 6개월 뒤인 지난 28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 판매 허가를 취소했다. 코오롱이 2016년부터 성분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했다고 발표했다.

“내 인생의 3분의 1을 인보사에 투자했다.” 이 전 회장이 인보사의 생산거점인 코오롱생명과학 충주공장을 방문해 했던 말이다. 1남2녀를 두고 있는 그는 인보사를 ‘네 번째 자식’이라고도 했다. ‘981103’이라는 숫자를 제시하며 “인보사 사업검토 결과 보고서를 받아본 날짜다. 인보사의 생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참모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보사 개발을 강행했다. 미국 현지 개발회사 코오롱티슈진을 세우고 국내외 임상을 진행하는 등 지난 20년 동안 직접 연구개발을 지휘했다. 초기 투자기간까지 합치면 총 27년 투자했다. 1996년 그룹 회장 취임 이후 줄곧 이 일에 매달려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오롱티슈진은 식약처가 인보사 국내 판매 허가(2017년 7월 12일)를 내주기 4개월 전인 그해 3월 미국 위탁생산업체로부터 인보사 성분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통보 받았지만 이를 숨기고 허가 신청을 강행했다고 식약처는 밝혔다. 그러나 코오롱은 이 전 회장이 이 사실을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이 전 회장은 퇴임사 마지막 부분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넘어질 수 있어. 이제와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 내가 가야 하는 이 길에 지쳐 쓰러지는 날까지. 일어나 한 번 더 부딪쳐 보는 거야’라는 가수 윤태규의 노래 ‘마이웨이’ 가사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이 전 회장은 이번 사태를 한 번쯤 넘어진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일까. 그리고 서둘러 사퇴한 뒤 새로운 창업을 하려했던 것일까.

신종수 논설위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