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여운학 (19) 평소 원하고 기도드렸던 네 가지 소원 이뤄

전도와 새신자 교육강좌 신청 쇄도… 대출금 이자 빚 청산과 장학회 설립

여운학 장로(왼쪽 일곱 번째)가 2006년 서울 서초구 규장선교센터에서 이슬비장학회 6기 수료식 및 7기 장학생 선발 감사예배를 드린 뒤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수 6:4~7)

하나님의 여리고 작전명령을 그림으로 나타내니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작전도가 그려졌다. 전도법은 간단했다. 여리고성을 7일 동안 일곱 바퀴 돌아서 무너진다는 여호수아서 내용을 전도에 그대로 적용했다.

핵심전략은 여리고성을 전도대상자로 보고 말씀 선포에 앞서 사랑의 편지를 7주 동안 보내면서 기도와 봉사로 여리고성처럼 단단히 닫힌 전도대상자의 마음 문을 연다는 것이었다. 전도편지를 1주에 1장씩 총 7주간 보내고 마지막에 교회에 초청하는 방식이었다.

이 그림대로만 해도 실패염려 없이 전도에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됐다. 이 전도법을 가리켜 그 유명한 ‘여리고 작전 이슬비전도’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슬비전도편지를 7장 한 세트로 만들었다. 그런 다음 새신자통신교육과 이슬비전도법 강좌를 실시했다. 꽉 막혔다고 생각했던 교회별 전도와 새신자관리의 길이 확 트였다.

교회마다 앞다퉈 이 강의를 듣기 원했다. 처음에는 나 혼자만의 강좌로 4일간 각 3시간씩 진행했다. 교회들은 더 짧은 기간에 마칠 수 있는 교육을 원했다. 그래서 4일을 3일로 줄였다. 그래도 강의 요청이 너무 밀려 부득이 2일 교육으로 단축했다.

이동식 이슬비전도학교는 국내 어디서든지 열릴 수 있었다. 그러자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외국에서도 이슬비전도와 새신자교육 강좌 신청이 쇄도했다.

이러는 사이에 이자가 비싼 고리채부터 원금을 갚기 시작해 2~3년 안에 은행 대출금까지 깨끗이 갚았다. 나는 평소에 원하고 기도만 드렸던 몇 가지 소원을 이루기 시작했다.

첫째 소원이었던 빚 청산이 이뤄졌다. 둘째 소원이었던 인재양성을 위해 신학대학원 2학년생 중에서 장학생을 선발해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는 이슬비장학회를 1995년부터 시작했다. 셋째 소원이었던 사무실 용지를 교통이 편리한 양재동에 샀다. 넷째 소원인 사옥도 건축했다. 이랜드와 계약해 1년 만에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지었다.

나는 60이 넘어서면서부터 문서출판 사역의 바통을 차세대에게 넘겨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규장문화사의 출판업무를 인계하기 위해 막내인 다섯째 진구를 일찍부터 업무의 기초인 서점 관리부터 창고 도서 관리까지 시켰다. 진구는 영업부장 상무 전무 부사장을 거쳐 1999년 사장 직무를 맡게 됐다.

주님은 내 생애의 마지막 사명을 주셨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주창하셨던 ‘민족개조의 꿈’이다. 그는 독립운동에 온 생애를 바치며 노력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이대로 나아간다면 독립을 이뤄도 세계적 경쟁 속에서 독립을 지켜나가기 힘들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리하여 민족개조 운동을 주창한 것이다.

그는 이 엄청난 일을 이루려면 기성세대의 의식과 성품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민족성을 바꾸기 위해 참되고 실속 있도록 힘써 실행하자는 무실역행(務實力行), 서로 이해하고 서로 양보하며 서로 사랑하자는 정의돈수(情誼敦修), 자아를 희생하고 하나로 뭉치자는 대동단결(大同團結) 등을 모토로 젊은이들을 훈련하는 흥사단을 조직하고 훈련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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