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 소속 방사선사가 양성자빔 조사기를 전립선암 환자의 치료 부위 가깝게 조정하고 있다. 환자는 치료대 위에 편안히 누워 있거나 엎드려 있으면 된다. 국립암센터 제공

빛의 60% 속도로 양성자 가속 종양만 정밀 타격… 부작용 없어
한국선 5만8000여건 치료
탄소 입자 가속하는 중입자 치료 ‘양성자’ 보다 치료 횟수 적어
2022년 하반기부터 치료 가능


암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의학 및 제약기술의 발전으로 항암, 방사선, 수술의 3대 표준 암 치료에 새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4차산업혁명의 핵심인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유전자 분석, 로봇, 3D프린팅 등의 첨단 기술이 암 치료에 접목되면서 암 정복으로 가는 길을 한층 밝히고 있다. 암생존율이 높아지며 암 경험자 관리도 중요한 부분으로 등장했다. 국민일보는 국립암센터와 공동 기획으로 암 치료 현장에 부는 변화의 바람을 살펴보는 ‘업그레이드, 암 치료’ 시리즈를 6회에 걸쳐 연재한다.

글 싣는 순서

① 꿈의 방사선치료, 양성자 vs 중입자
② 면역치료, 암과의 새로운 전쟁
③ 희소·난치암 환자에게도 희망을
④ 암, 운명을 갈라놓은 유전자
⑤ 로봇, AI가 바꿔놓는 암 치료
⑥ 암 생존자 200만명 시대


A씨(61·여)의 친척 중에는 유난히 간암 환자가 많다. A씨 또한 2년 전 그토록 피하고 싶은 간암을 진단받았다. 주치의는 치료가 어렵긴 하지만 아직 초기이니 ‘색전술’(암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 차단)을 하자고 제안했다. 고민하던 A씨에게 남편은 차라리 독일에 가서 치료를 받자고 했다. 남편 지인이 독일에서 ‘양성자 치료’를 받고 간암을 성공적으로 이겨냈다는 것이다. 비싼 치료 비용이 맘에 걸렸다. 그러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국내에서도 같은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국립암센터에서 4차례 양성자 치료를 받고 완쾌됐다. 결과뿐 아니라 치료 과정도 마음에 들었다. A씨는 “그저 침상에 편안히 누워 있으면 되고 어떤 고통도 없었다”며 만족해했다.

‘꿈의 암 치료’로 불리는 양성자 치료가 기존 방사선 치료의 단점을 보완해 많은 암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2007년 국립암센터에 처음 양성자 치료기 3기(고정빔 1기, 회전빔 2기)가 도입된 후 11년간 5만6000여건의 치료가 이뤄졌다. 2015년엔 삼성서울병원이 정밀성과 안전성을 한층 강화한 양성자 치료기(회전빔 2기)를 들여와 지난 4월 말까지 1800여명(2004건)이 혜택을 봤다. X선으로 치료가 힘든 소아암, 안구암(눈암), 재발암 등 희귀·난치암 치료에 특히 효과적임이 입증됐다.

X선을 쪼여 암을 치료하는 일반 방사선 치료는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조직까지 손상을 줘 피로감, 식욕부진, 피부변화, 폐렴 등 부작용이 따른다. 장기적으로는 방사선에 노출된 다른 부위에 2차암 발생을 초래하는데, 성인보다 소아에서 위험성이 더 높다.

양성자 치료, 치료 효과↑ 부작용 ↓

양성자 치료는 X선의 이런 단점들이 훨씬 적어 그만큼 암 환자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양성자 치료는 수소 원자의 핵을 구성하는 양성자를 빛의 60%에 달하는 속도로 가속시켜서 환자 몸에 쏘아 암 조직을 파괴하는 첨단 ‘입자 방사선’ 치료법이다. 특정 목표 지점에 도달한 순간, 최대 에너지를 쏟아붓고는 소멸하는 양성자의 물리적 성질인 ‘브래그 피크(Bragg Peak)’를 이용한다. 양성자 빔이 인체를 통과해 암에 도달하기까지 정상 조직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암 조직만을 집중 공격해 죽인 뒤에는 에너지가 곧바로 사라진다. 이런 특성 때문에 암 잡는 ‘정밀타격 유도미사일’ 혹은 ‘임무를 마치고 조용히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특수부대’에 비유된다.

박희철 삼성서울병원 양성자치료센터장은 3일 “브래그 피크 이후에는 방사선이 전혀 남지 않고 멈춘다”면서 “정상 조직에 가는 방사선이 적기 때문에 그로 인한 부작용과 2차암 발생 가능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성자 치료는 간암 및 췌·담도암, 수술이 불가능한 폐·식도암, 뇌종양, 두경부암(눈·안면부암), 전립선암 등 방사선 치료가 필요한 모든 암종에서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치료 효과는 높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암의 경우 양성자 치료가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희귀암 중 하나인 ‘척색종(뇌·척추에 발생)’은 중추신경 가까이 있어 수술도 어렵고 기존 X선에 저항성이 강하지만 양성자를 이용하면 70~80% 이상의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다.


X선 치료 부위에 암이 다시 생긴 재발암도 마찬가지다. 부작용 우려 탓에 다시 X선치료를 하기 힘들고, 하더라도 방사선량이 불충분해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양성자 치료는 완치가 가능하다. 김주영 국립암센터 융합기술연구부 최고연구원은 “양성자 치료는 소아암이나 연간 50명 이하로 드물게 발생하는 눈의 흑색종, 척색종, 연골육종(뼈·연골에 발생) 등 희귀암의 경우 완치율을 높이고 간암, 폐암 등 흔히 발생하는 암은 치료 후 환자 삶의 질을 좋아지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특히 “소아의 눈에 생기는 망막모세포종은 항암제를 쓰면 2차암 위험이 높고 수술은 안구를 적출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면서 “실제 오른쪽 눈에 망막모세포종이 생긴 3세 남자 아이는 양성자 치료후 안구 손상 없이 치료돼 현재 청소년으로 잘 성장했다”고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단, 혈액암이나 다발성 전이암(여러 부위에 퍼진 암)은 양성자 치료로 효과를 볼 수 없다. 양성자 치료는 암종이나 환자 상태에 따라 20~25회 정도 진행되며 한번 치료에 30~60분 걸린다. 치료 중 아무런 통증을 느낄 수 없다. 18세 이하 소아암 등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돼 치료비 부담도 크게 줄었다.

중입자 치료, 날카로운 명사수

또 하나의 차세대 입자 방사선 치료법으로 최근 주목받는 게 ‘중입자 치료’다. 양성자 치료에 쓰이는 수소 입자보다 12배 무거운 탄소 입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뒤 암에 집중 조사해 암세포를 파괴한다. 양성자보다 무겁기 때문에 2~3배 높은 암세포 파괴 능력을 지니는 걸로 알려져 있다. 양성자 치료처럼 주변 정상 조직에 대한 피폭이 최소화돼 부작용이 적다. 2014년 학술지 ‘네이처’는 중입자 치료를 ‘종양만을 저격하는 날카로운 명사수’로 칭했다. X선이나 양성자보다 치료 횟수(평균 12회)가 적은 것도 장점이다. 혈액암을 제외한 모든 고형암(덩어리 암)에 적용 가능하고 폐암과 간암, 췌장암의 경우 기존 X선보다 우월한 치료 효과를 보이는 걸로 알려졌다.

중입자 치료기는 워낙 고가의 장비여서 전 세계적으로 독일과 일본, 중국 등에 10여기 정도만 운영 중이다. 국내에는 들어와 있지 않다. 이 때문에 1억원 넘는 큰 비용을 지불하고 독일 일본 등으로 ‘원정 중입자 치료’를 떠났다가 엉뚱한 치료를 받거나 현지에서 사망하는 암 환자 사례가 최근 국민일보 보도를 통해 알려지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국민일보 2019년 4월 3일자 1면 참조).

국내 암 환자들은 일러야 2022년 이후에나 중입자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연세의료원이 2022년 하반기쯤 첫 환자 치료를 목표로 국내 처음 중입자 치료기 도입을 진행 중이다. 의료원 측은 연간 1200명 내외 암 환자가 중입자 치료를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울러 자금 문제로 수년간 지지부진하다 최근 서울대병원의 운영 참여로 돌파구를 마련한 정부 주도 중입자 치료기 도입(부산 기장군에 구축)도 2023년쯤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연세암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김용배 교수는 “중입자 치료가 양성자에 비해 모든 점에서 월등한 것은 아니다. 수소 입자와 탄소 입자의 물리적·생물학적 특성을 고려해 최적의 결정을 하면 되며 향후 두 입자 방사선 치료는 경쟁보다는 상호 보완하며 대한민국 암 치료의 질을 한 단계 상승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 김태현 국립암센터 양성자센터장
“혈액암·다발성 전이암 환자 해외 원정 치료 신중해야 ”


“‘치료할 수 있다’와 ‘효과가 있다’는 것은 달라요.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서면 당연히 치료합니다. 암 환자의 생존기간 연장이나 삶의 질 향상 등에 의미 없다면 의사는 양심을 걸고 그 치료를 하면 안됩니다.”

김태현(사진)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장은 3일 “기존 X선 치료의 효과가 부족하거나 부작용이 많으면 양성자나 중입자 치료를 받는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간암은 주변의 정상 간 조직을 보호해야 하고 소아암 역시 장기적인 부작용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양성자 치료가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전이암이라도 다발성이 아닌, 소수 전이암은 양성자 치료가 가능하다.

그는 “하지만 혈액암과 여러 곳에 퍼져 있는 다발성 전이암의 경우 양성자나 중입자 치료가 환자에게 도움이 안된다”면서 “독일, 일본 등 해외에서 일부 돈벌이를 목적으로 다발성 전이암에도 적용하고 있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브로커를 통해 국내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들은 말기 암 환자들이 해외에 비싼 중입자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현지에서 사망하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또 양성자 치료로 불가능한 암이 중입자 치료로 가능할 수도, 아니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암종과 진행 여부, 환자 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김 센터장은 “중입자 치료가 꿈의 암치료라고 불리지만 만능인 것은 아니며, 반드시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하고 의견을 들어 결정하는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도 양성자 치료가 도움되는 환자에게는 다 해 주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암 치료 수준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앞서 간다. 해외 원정 치료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아울러 “양성자 치료기가 아직 국내 2곳밖에 없어 국립암센터는 한달, 삼성서울병원은 두달 정도 기다려야 한다”면서 “환자들이 더 많은 혜택을 보려면 도입 병원이 더 늘어나야 하고 장비의 업그레이드, 숙련된 전문의 양성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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