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지난해부터 세 차례 김정은 만나 봄이 올 것으로
기대됐으나 남북 관계는 예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어
안보태세를 튼튼히 하고 북한 비핵화에 더 집중해야


시대가 많이 변했다. 지금 세계는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첫 번째 남북 정상회담을 한 때는 2000년 6월이다. 19년이 지났지만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55년 만에 처음으로 만나는 그 감동은 지금도 강렬하다. 한반도 분단사에서 큰 획을 그었던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북한 관계도 대전환의 길로 들어선 듯했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고 남북 화해와 제반 분야의 교류, 협력이 봇물 터지듯 했다.

먼저 대규모의 식량과 비료가 지원돼 북한 주민들의 식량난을 해결했다. 2만여명의 남북 이산가족들이 만났다. 경의선과 동해선의 철도·도로가 연결되고 하루에 수백대의 차량과 철도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왕래했다. 바닷길과 하늘길이 열려 비행기와 선박이 오갔으며, 어느 해에는 18만6000명의 각계 인사들이 상대 지역을 방문하기도 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이 시작됐고, 남북 교역이 점점 증가해 240억 달러에 이르렀다. 한때는 남북 교역이 북한 대외 교역의 40%에 달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됐다면 남북 관계는 전환됐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되지 못했다. 그 근본적 이유는 북한의 핵 개발 때문이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27 판문점선언을 채택했다. 그리고 두 번을 더 만났다. 정부는 봄이 온다고 말했으며, 국민들은 그렇게 믿고 6·15 시대의 재현을 기대했다. 그런데 남북 관계에서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기대했던 성과가 나오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은 사실상 예견된 일이었다.

그것은 정세가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문명사적 변화는 차치하고라도 우리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의 변화가 현저하다. 첫째로 크게 달라진 것은 북한이 핵을 갖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은 우리의 안보를 위협한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포용정책을 추진할 때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안보를 튼튼히 하면서 적화나 흡수 등 상대방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지 않고 남북한 간의 교류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함으로써 적극적인 화해정책의 전제가 되는 안보가 취약해졌다. 거기에 더해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가 시행 중이다.

둘째, 북한이 달라졌다. 지도자가 바뀌었다. 그리고 환경에 적응하면서 체제 유지에 대한 자신감도 커진 것 같다. 배급제가 무력해지고 시장이 북한의 민생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부의 지원이 절실했던 때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이제 북한은 큰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난 때문에 남쪽으로부터 과거와 같은 지원과 협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제가 통하지 않는다. 북한은 그런 것을 부차적이고 시시껄렁한 것이라고 말한다. 셋째, 더 근본적인 변화는 국제정치의 판이 바뀌고 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동아시아의 국제정치가 탈냉전 질서에서 이탈하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신냉전의 양상이 뚜렷하다. 중국은 장차 세계 패권국이 되겠다는 계획을 말했고, 미국은 이를 힘으로 저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북한을 후원하는 중국이 커졌고 미국과 중국에 북핵 문제는 우선순위가 아니다.

이러한 정세의 변화를 날카롭게 보고 대응해야 한다. 우리가 변화에 맞서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새로운 국가 전략을 세워야 한다. 국제정세의 격변은 국운을 좌우할 것이고,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기회가 될 것이다. 어쩌면 정세가 크게 변해야 기회가 생긴다. 정세의 변화를 두려운 마음으로 보지 말고, 국가와 민족의 발전, 한반도 통일을 이룩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판이 바뀌는 마당에 지난날의 낡은 질서에 매달려 있으면 답답해지고 국가는 재난을 당한다. 조선말이 그랬다.

안보태세를 튼튼히 하는 것이 우선이다. 북한 핵 문제가 풀리지 않고 주변 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우리는 자강과 동맹을 통해 안보를 지킬 수 있는 역량을 확충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평화는 힘을 바탕으로 하는 세력 균형에 의해 보장된다. 남북한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안보가 흔들리지 않아야 가능하다.

북한의 비핵화에 더 집중해야 한다. 어설픈 비핵화는 안 된다. 북한 비핵화가 매우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악착같이 추구해야 한다. 지난 2월 28일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은 상대방의 해법을 거부했고 장기전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가 마냥 지체되는 것은 나쁜 일이다. 북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으면 한반도의 평화는 오지 않는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공허해진다. 북한으로서는 핵을 보유하고 경제를 망친다면 좋은 선택이 아니다. 정부는 미국과 적극 공조해 북한이 조속히 바람직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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