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미국 워싱턴DC ‘헌법로(constitution avenue)’에 있는 국립역사박물관을 찾았다. 역사박물관에 가보면 전시물 하나하나가 방문자 개인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깊은 인상으로 다가오거나 혹은 무심코 지나치는 일이 반복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외국의 역사박물관은 ‘그들이 스스로의 역사를 어떻게 분류하는가’ 하는 관전 포인트를 추가로 제공한다.

흔히 우리는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 조선 등 왕조별로 역사에 접근한다. 건국 이래 왕의 백성인 경험이 없던 미국은 어떻게 자신의 역사를 분류할까. 1964년 ‘역사와 기술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가 1980년 국립역사박물관으로 개명한 이 박물관은 3층 건물에 ‘움직이는 미국(America on the move)’, ‘미국 민주주의(American democracy)’, ‘자유의 값(Price of freedom)’ 등 24개 테마룸이 들어서 있다. 310여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왕조 지배의 경험이 없는 나라이기에 이런 식의 역사 구성도 가능하겠구나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에 이 주제들의 배치가 문득 흥미롭게 다가왔다.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1층에는 13개의 전시공간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미국적 가치의 핵심이라 할 민주주의나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전구를 발명한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의 전구 발명 과정, 동시대 경쟁자들, 조명 기술의 세부적 설명 등이 당시의 실제 전구나 관련 장치들과 함께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에 전시된다. 전시실의 이름도 특이하다. 미국 독립전쟁이 미국혁명(American revolution)으로 불림은 미국인이 스스로 나라를 세운 것에 ‘혁명’이라는 위상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에디슨의 전구 발명을 다룬 전시실을 ‘혁명에 불 밝히기(Lighting a revolution)’라는 이름을 붙였다. 건국 이래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온 미국인의 개혁적인 삶에 불을 켜준 것으로 비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의 발명에 상당한 가치를 부여하는 실용적 사고방식이 엿보인다.

1층에는 에디슨의 이야기뿐 아니라 발전기, 배터리, 증기엔진 등 ‘동력 장치(power machinery)’ 개발의 역사가 자세하게 다뤄지고 자동차의 등장, 고속도로 확대 등 미국인 삶의 인프라가 구축돼온 과정이 초기 자동차의 실물, 혹은 모형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기업의 역사도 1층에서 다뤄진다. 건국 시조의 하나인 벤자민 프랭클린이 자신의 ‘펜실베이니아 가제트지’를 인쇄하기 위한 비용 확보를 위해 광고수익을 활용했다는 것과 발명왕 에디슨이 자신의 기술 확산을 위해 광고가 필요했다는 사실들을 전하며 미국 사회에서 광고의 중요성을 미국 역사의 한 테마로 설정하고 있다.

또 “땅을 경작하며 노동하는 사람들이 신으로부터 선택된 자”라며 농업을 중요시하던 토머스 제퍼슨과 “제조업 설비는 단순한 생산력 증대 이상의 가치를 가져올 것”이라던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의 말 등 건국 시조들의 경제철학의 대립도 전하고 있고, 철강왕 카네기, 철도왕 밴더빌트 등 18, 19세기 기업가들의 면모와 혁신적 시도가 소개되고 있다.

이처럼 경제와 기술과 혁신의 역사를 대변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13개 테마로 소개되는 것을 살펴본 이후 한 층을 올라가서야 이념과 정치를 만난다. 참으로 ‘미국적인’ 것의 의미를 새삼 느껴 본 박물관 기행이다.

주영기(한림대 교수·미디어스쿨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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