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 나의 유일한 문화생활은 일요일마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일이었다. 지정좌석제가 없던 때라 앉은 자리에서 같은 영화를 연달아 서너 번씩 보곤 하였다. 같은 영화를 지겨워서 어떻게 여러 번 보냐고 묻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몇 번을 연속해서 봐도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재미있었다. 그 이유는 처음 볼 때 줄거리에 몰입해 보다가 놓쳤던 장면을 볼 수 있고, 좋았던 대사를 다시 음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도 비슷할 때가 있다. 인상적이었거나 마음에 여운이 오래 남았던 책들은 종종 꺼내서 다시 펼쳐 보곤 한다. 같은 책을 다시 읽게 되는 간격이 길면 길수록 즐거움은 커졌다. 물론 짧아도 상관없지만 눈에 띄게 다른 느낌을 얻는 경우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시간 간격의 차이는 처음 책을 읽었던 ‘나’와 지금 책을 읽는 ‘나’가 달라져 있음을 자각하게 해준다. 처음 읽었을 때는 미처 몰랐던 작품이나 작가들, 여러 지식이 눈에 들어온다. 그사이에 앎의 경계가 더 넓어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정신의 새 그물은 책으로부터 새로운 내용을 길어 올려준다. ‘이런 구절도 있었을까’ 모르고 지나쳤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책을 다시 읽게 되면 처음에 책을 읽고 썼던 기록을 찾아 읽어본다. 어떤 부분을 다르게 느꼈는지 살펴본다. 항상 그렇지는 않았지만 책을 다시 읽게 되면 처음 느낌보다 더 좋은 경우가 많았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보통 처음 읽었을 때는 그 책에 대한 기대가 컸을 때가 많았다. 기대가 크니 읽으면서 실망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면 이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기대가 크면 책이 가지고 있는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는 데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는 책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고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이치일 것이다. 기대와 감정이 앞서게 되면 사람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게 된다. 감정의 거품을 조금 걷어내면 그 사람의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너무 기대하지도 말고, 한 번에 모두 판단하려 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문화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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