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주한미군 용산기지는 역사적으로 군사 요충지였다. 한강을 통해 서울 중심지에 상륙할 수 있고, 쉽게 병력과 물자를 나를 수 있으며, 퇴로를 확보할 수 있는 전략적 요해지로 꼽혔다.

용산 일대에 외국군이 첫발을 내디딘 것은 13세기 고려 말이다. 고려를 침입한 몽고군이 용산지역을 병참기지로 활용했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원효로와 청파동에 주둔했고,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2년에는 청나라 병력이 용산지역에 진을 쳤다. 러일전쟁을 앞둔 1904년 일제가 수많은 병사들이 주둔할 수 있는 병영을 지었다. 일제는 조선주둔일본군사령부와 조선총독부 관저, 20사단 사령부를 설치하고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키면서 호시탐탐 만주 침략의 야욕을 불태웠다.

일제가 패망하자 미군 1만5000명이 1945년 9월 용산기지를 접수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대부분의 미군 전투병력은 한국을 떠났다. 미군은 1953년 7월 이후부터 용산기지에 다시 둥지를 틀었다. 1957년 주한미군사령부,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하면서 용산기지를 관할해 왔다.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인 험프리스 준공에 맞춰 용산기지에 있던 미군이 순차적으로 이전했다. 주한미군 지상군 핵심 전력인 미8군사령부는 2017년 7월, 주한미군사령부는 지난해 6월 평택으로 옮겼다. 유일하게 용산기지에 남아 있는 한미연합군사령부 본부도 험프리스로 이전한다. 한·미 국방장관은 3일 회담을 열고 이같이 결정하면서 용산공원 조성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당초 한미연합사 본부를 국방부 영내로 옮기려고 했으나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부임 이후 험프리스로 이전 계획을 변경했다고 한다.

‘금단의 땅’이었던 용산기지가 지난해 11월 ‘용산기지 버스투어’를 통해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남쪽 벙커(일본군 작전센터), 121병원(일제 총독 관저 터), 위수감옥(일본군 감옥), 일본군 병기지창, 미8군사령부, 한미연합사 등을 관람하는 투어 코스였다. 한미연합사 본부까지 이전하고 용산공원 조성 사업이 착착 진행되면 더욱 많은 사람이 용산기지를 방문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대 규모인 국가 도시공원이 될 용산공원의 개장을 손꼽아 기다린다. 후손에게 물려줘도 손색이 없는 공원을 만들어야 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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