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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김준동] 현충원을 지나며

아련한 추억 깃든 현충원… 희생정신 기리기 위해서는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통합으로 가야


서울 사람들이 지척에 두고도 찾지 않는 몇 곳이 있다. 동작구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도 그중 하나다. 그러고 보니 현충원 내부를 둘러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인가 싶다. 선생님과 단체로 방문해 경내 청소를 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왜 여기에 와야 하지’하고 농땡이를 쳤던 장면이 어렴풋하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출퇴근 지하철로 현충원(동작역)을 지나간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내려 방문한 적 없다. 가끔 버스로 정문 앞을 지나면 그저 예전 추억을 되살릴 뿐이다.

서울현충원은 관악산 기슭의 공작봉 능선이 삼면을 감싸고, 앞에는 한강이 굽이쳐 흐른다. 1954년 국군묘지로 출발한 현충원은 총 143만㎡ 면적에 한국전쟁, 월남전 등에서 산화한 전몰 군경과 애국지사, 국가유공자 17만2000여 위패가 안장돼 있다. 65년 국립묘지, 2005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계속된 안장으로 서울현충원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79년에는 대전에도 현충원이 만들어졌다. 서울의 2배가 넘는 면적(329만6807㎡)이다.

현충원에서 첫 추도식이 열린 때는 56년 6월 6일 첫 현충일이다. 당시에는 국군묘지로 불렸다. 이날을 현충일로 지정한 것은 절기상 망종(芒種)으로 고려 때부터 전사 장병들의 추모 행사를 지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제정 당시에는 대상이 한국전쟁 때 순국한 국군과 경찰에 국한된 호국영령만 기리는 날이었으나 65년부터는 일제강점기 독립투쟁을 벌이다가 희생된 순국선열까지 함께 추모하게 됐다.

현충일에는 추념식과 참배행사 등이 국립현충원에서 거행되며 가정에서는 조기를 게양한다. 전 국민이 오전 10시 사이렌 소리에 맞춰 묵념을 올리는 의식도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현충원을 찾는 발길은 눈에 띄게 줄었고 조기를 게양하는 가정도 많지 않다. 사이렌에 고개를 숙이는 사람도 거의 볼 수 없다. 단지 쉬는 ‘빨간 날’로 인식될 뿐이다. 서울현충원을 찾은 참배객을 보면 2017년 290만여명에 달했지만 지난해에는 220만여명으로 떨어졌고 올 4월 현재까지는 72만명에 불과하다. 많은 국민에게 친숙하고 가까운 곳인 미국 워싱턴DC의 알링턴 묘지와 달리 우리는 가깝지만 먼 그런 곳이 돼 가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 현충일에는 여배우 이보영씨가 유연숙의 시 ‘넋은 별이 되고’를 애절한 목소리로 낭독해 화제를 모았다. ‘모른 척 돌아서 가면/ 가시밭길 걷지 않아도 되었으련만/ 당신은 어찌하여/ 푸른 목숨 잘라내는/ 그 길을 택하였습니까/ ~피맺힌 절규로 지켜낸 조국은/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잊혀지는 일 많다 하지만/ 당신이 걸어가신 그 길은/ 우리들 가슴속에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추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애국과 보훈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일 수 없다”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에 국민께서 함께 마음을 모아주시기 바라며 그것이 대한민국의 힘이 되고 미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한분 한분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도 없고, 나누어지지도 않는 그 자체로 온전히 대한민국”이라고 했던 2017년의 추념사와 맥을 같이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때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저의 국민이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뒤 그동안 틈만나면 소통과 통합을 강조했지만 실제 국정운영은 말과는 달리 엇나가기 일쑤였다. 자신의 지지층에 얽매인 나머지 진영 논리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의 이념 분열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예순네 번째 현충일이다. 현충일이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문 대통령도 강조했듯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데 좌우가 없었고 국가를 수호하는 데 남녀노소가 없었다. 신산(辛酸)의 세월을 보낸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는 진영과 이념을 넘어 화합과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와 협력의 길로 전진해야 한다. 아집과 ‘마이웨이’는 국민의 삶을 더 팍팍하게 하고 고달프게 할 뿐이다. 현충일 아침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숙제다.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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