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자의 가슴은 봉긋할까. 인간이 아닌 영장류 암컷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기간이 아니면 유방이 평평한데 인간은 아니다. 성인 여성의 그것은 항상 반구형(半球形)의 형태를 띤다. 수유를 위해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넘겨짚진 마시길. 반구형의 유방은 수유와 큰 상관이 없다. 외려 아기들이 젖을 먹을 때 숨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여자의 가슴은 왜 그렇게 생긴 걸까. 영장류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독특한 진화론적 해석을 내놓은 적이 있는데 간추려 소개하자면 이렇다. 인간은 직립 보행을 하게 되면서 신체 앞면으로 성적(性的) 신호를 발산해야 했다. 동물이 엉덩이로 성적 신호를 보낸다면 인간에겐 가슴이 ‘모방적 궁둥이’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6월 태어난 딸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종종 이 학자의 말이 틀렸다고 여기곤 했다. 내 품에서 징징대던 아기는 엄마에게 안기면 울음을 그칠 때가 많았다. 여성의 가슴은 성적 시그널을 발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기를 품기 위해 진화된 결과라고, ‘여자의 가슴=아기의 요람’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이런 생각이 오래 가진 않았다. 매일 아기를 안고 어르고 재우다 보니 언젠가부터 딸은 내 품에서도 곧잘 단잠에 들었다. 여자의 가슴은 육아와 상관이 없었다. 아빠인 나는 언젠가 엄마인 아내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대한민국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아빠의 육아가 엄마의 그것에 버금가려면 아기와 보내는 시간부터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가장 먼저 고민하는 선택지는 육아휴직이다. 하지만 낮은 휴직 급여와 보수적인 회사 분위기를 생각하면 언감생심이다.

답답함에 뒤적이게 되는 건 결국 북유럽 국가들의 근사한 육아 시스템을 소개한 책들이다. 최근 일별한 신간 중에는 ‘스웨덴의 저녁은 오후 4시에 시작된다’ ‘스웨덴 라떼파파’ 같은 책들이 그랬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이런 책들을 읽노라면 어느 순간 마음속 백기를 꺼내 흔들게 된다. 스웨덴은 부모휴가(육아휴직)를 남자에게 사실상 강제하는 방법으로 육아의 밸런스를 실현할 수 있었다. ‘스웨덴의 저녁은…’에 담긴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정책이 문화를 만든다”고 할 수 있다. 그곳 사람들은 “정부는 믿지 못해도 정책은 믿는다”고 한다.

물론 라테파파가 되는 방법에 육아휴직만 있는 건 아니다. 퇴근 이후 넉넉한 시간을 확보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허깨비 같은 슬로건이 돼버렸지만 결국 ‘저녁이 있는 삶’이 답이다. 이 삶을 가능케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시 북유럽의 예를 들어보자. 덴마크 회사의 경우 점심시간이 없다고 한다. 일찍 퇴근하기 위해서다. 덴마크 직장인은 오전 8시쯤 출근해 오후 3~4시까지 일하다 집으로 돌아간다. 점심은 집에서 싸간 샌드위치로 갈음한다. 덴마크인 에밀 라우센은 지난해 펴낸 ‘상상 속의 덴마크’라는 책에서 “점심시간은 포기하고 일찍 퇴근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는 게 덴마크 직장인들의 생각”이라고 적었다.

많은 이에게 지겨운 이야기처럼 들릴 북유럽 얘기를 기다랗게 늘어놓는 이유는 저들의 삶이 우리의 미래가 돼야 해서다. 2012년 유엔이 발표한 ‘세계 행복 보고서’만 보더라도 노르딕 국가인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는 행복 순위에서 차례로 1~3위에 랭크됐다.

우리는 언제까지 아이를 키우는 일을 개인이 도맡아야 하는 걸까. 언제까지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부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며, 많지 않은 월급에 한숨을 내쉬어야 할까. 정부가 아기 부모들의 뒷배가 돼주는 시대는 언제쯤 올 수 있을까.

2년 넘게 신문사에서 출판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신간 가운데 눈에 띄는 작품을 골라 읽은 뒤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그동안 마주한 책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문구는 북유럽의 멋진 개인주의를 다룬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에 나온 구절이었다. 책에서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으로 명명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20세기부터 21세기까지 이어져 온 노르딕 사회의 원대한 야망은 개인을 가족 및 시민사회 내 모든 형태의 의존에서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었다. 가난한 자들은 자선으로부터, 아내를 남편으로부터, 자녀를 부모로부터, 노년기의 부모를 성인 자녀로부터. …모든 인간관계가 완전히 자유롭게 진실해지도록 그리고 오직 사랑으로 빚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박지훈 문화부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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