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여운학 (22) 서울 지하철역에 ‘사랑의 편지함’ 설치

일본 교육 연수 중 지하철 광고서 착안… 지하철 본부 찾아가 정식 인가 받아

규장문화사 설립자인 여운학 장로가 1987년 서울지하철 역사 안에 설치한 ‘사랑의 편지’ 보관함. 사랑의 편지는 지금도 많은 지하철 이용객에게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1987년 시작한 ‘서울지하철 사랑의 편지’도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70년대 후반 탐구당 부사장으로 일할 때다. 아시아 출판관계자들이 유네스코의 출판인 교육연수를 위해 2개월간 도쿄 신주쿠 혼마치에 모였다. 거미줄처럼 짜인 지하철을 주로 이용했는데 그곳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1985년 10월 서울지하철 1~4호선 전 구간이 개통됐다. 당시 전도열이 뜨거웠던 나는 지하철 탑승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무료로 모든 계층의 승객들에게 값없이, 그러면서 이슬비에 옷이 젖듯 하나님의 사랑이 싹트게 하는 길이 무엇일까.’ 승객들이 다음 전철을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에 자유로이 뽑아 읽을 수 있는 ‘사랑의 편지함’을 설치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서울지하철기독교선교협의회 사무국장 류중현 목사와 함께 지하철본부를 여러 차례 찾아가 어렵게 ‘사랑의 편지’를 설치하도록 정식 인가를 받았다.

그리하여 장년판, 청년판, 청소년판, 어린이판 등 네 가지 ‘사랑의 편지’를 규장에서 만들었다. 처음에는 1호선과 2호선 100여개 지하철역마다 양편에 하나씩 설치했다. 우편함과 비슷한 빨간색 상자 4개를 만들고 그 속에 100장씩 편지를 꽂았다. 그리고 이런 문구를 써넣었다. “이 사랑의 편지를 읽으신 후 다른 독자를 위해 제자리에 다시 꽂아주세요.”

그러나 오전 중에 편지를 꽂자마자 금세 없어졌다. 우리 삶의 수준이 그러했다. 다시 꽂아 놓아도 역시 그랬다.

하는 수 없이 두꺼운 타블로이드판으로 인쇄해 벽에 붙였더니 그것마저 누가 떼어갔다. 1992년부터는 알루미늄 액자를 만들어 벽에 붙이고 투명 플라스틱으로 막았더니 그것을 깨기도 하고 액자 문을 열어 떼어가기도 했다.

효과는 컸다. 당시 지하철 사랑의 편지를 읽기 위해 역마다 내려서 읽는다는 독자가 있었다. 회사 동료들에게 편지를 나눠줬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회사원도 있었다. 밤늦도록 사무실에서 사랑의 편지 원고를 쓰고 있으면 문구와 관련해 충고해주는 전화도 걸려왔다.

서울지하철 사랑의 편지는 3~8호선이 각각 생길 때마다 수요가 늘었다. 부산 대전 대구 광주 지하철로 규모가 확대됐다. 천주교와 불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선교편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또 다른 공개적 선교방법이 있었다. 서울 서초구 규장 사옥에 설치한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문구가 적힌 광고판이다.

1996년 건물을 세우고 옥상에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붙였다. 이듬해 6월부턴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로 교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상 초유의 IMF 외환위기로 경제난이 엄습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그 글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하루는 신사 한 분이 찾아와 30만원의 감사헌금을 내밀었다. “사업 파산으로 절망에 빠졌는데, 그 글을 읽고 다시 용기를 얻었습니다. 성공해서 다시 오겠습니다.”

어떤 장로는 믿지 않는 친구와 골프를 치다가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와 이리 안 맞노”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불신자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야야, 양재동 가봐라. ‘와 걱정하노 기도할 수 있는데’라꼬 써 있대이.” 이 광고판은 지금도 낮에는 원색으로, 밤에는 뒤에서 비치는 전등불빛을 통해 말없이 불행한 영혼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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