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이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커질 때 박근혜정부가 취한 외교전략이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다. 전략적 모호성은 첨예한 이슈에서 행위 주체가 전략적으로 특정한 입장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위험 부담을 줄이는 행위를 말한다. 사드 배치를 거부하려니 동맹인 미국의 눈치가 보이고, 배치하자니 중국의 보복이 두려웠다. 박근혜정부는 사드 배치 직전까지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 보복은 그대로 진행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기간 사드 배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전략적 모호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집권 후에도 이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미·중 무역전이 전면전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한국이 다시 세계 양대 강국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는 실존적 고뇌에 직면했다. 미국은이미 수개월 동안 한국 정부에 화웨이 제품을 도입하지 말라고 요청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5일에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한국 기업에 화웨이 장비를 쓰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반면 중국 외교부 당국자는 “(한국 정부가)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 관영언론은 화웨이 설비수입을 한국이 중단하면 한국기업의 손실은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정부는 ‘낮은 키(low-key)’ 모드로 간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사드 사태 때처럼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시간을 벌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드 대응의 결과를 돌아보면 전략적 모호성이 국익에 이익은커녕 큰 손실만 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센터장은 “‘님도 보고 뽕도 따자’는 식으로 선택하지 않고 미루는 것이 미·중 모두에게 기회주의적 행태로밖에 비치지 않았다”면서 “전략적 모호성은 이제 한계에 달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지금에야 난리지만 미·중이 정면충돌로 가는 큰 기운의 변화는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됐다”면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전략적 프레임을 아직도 가져가겠다는 것은 너무 현실을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중국 시장에 기댄 생존과 경제 성장의 한계는 사드 보복으로 뼈저리게 실감했다”면서 “새로운 통상 질서의 틀을 짜는 미국과의 교감도 절실한 만큼 ‘안미경미(安美經美·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 국가 전략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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