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훈 목사의 전도군사학교] 내 삶에서 주님 향한 충성심 보여줄 때만 ‘일꾼’ 보내주셔

<8> 동역자 세우기

이수훈 당진동일교회 목사(왼쪽)가 1997년 여름 충남 당진 난지도에서 수련회를 갖고 초창기 성도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들은 헌신된 동역자로 복음전파 사역에 집중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에서 복음을 위해 함께한 귀한 동역자들을 일일이 소개한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 16:3~4)

바울에겐 복음을 위해 생명을 바친 동역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협력은 자기 목숨도 내놓을 정도로 대단했다. 이 말씀을 볼 때마다 부러웠다. 그래서 기도시간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같은 일꾼을 세워 주세요”라고 간구했다. 장시간 그렇게 기도를 하다가 마음의 감동이 있었다.

‘나는 복음을 위해,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는가. 성도들의 헌신을 유발해놓고 그 헌신을 이용해 교회라는 이름의 내 야심을 채우려는 것은 아닌가. 나는 정말 사심 없이 충성스러운 자의 길을 걷고 있는가.’ 그때부터 매일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목회자의 고백이 중요하다

인생은 자기 고백에 따라 움직인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진솔한 고백대로, 자신이 말한 대로 삶이 채워진다. 생각은 언어를 통해 표출되고 언어는 인생을 규정한다. 이것이 말의 힘, 생각의 힘이다.

1996년 11월 4일 산골짜기를 따라 찬바람이 불어오던 날이었다. 나무 의자 10개를 빈 밭에 놓고 설립예배를 드렸다. 산속에서 첫 개척예배를 드리면서 고백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결단을 했다. 혹독한 자기 부인이 시작됐다.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삶, 그것을 위해 하루도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내 고백이 선명하고 그 고백만큼 진실한 삶을 산다면 복음만을 위해 생명을 바치기로 결단한 동역자가 나오지 않을까.’

결단 후 모이기 시작한 동역자

하지만 목숨을 바치는 삶은 생각처럼 녹록지 않았다. 예수님이 보여주셨듯 생명은 생명을 바칠 때 살릴 수 있었다. 그때부터 정원의 나무 한 그루까지 주님의 몸으로 생각하면서 돌봤다. 내 몸과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닥치는 대로 했다. 목수가 되기도, 농부가 되기도 했다. 밤에는 노동하고 낮에는 전도하는 생활을 즐겁게 감당했다.

그렇게 힘을 다하자 하나님께서 일꾼을 보내주시기 시작했다. 산골 개척교회에 어린이집을 세웠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올 차량이 없었다. 운전자에게 지급할 사례비도 없었다. 당시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보육시설에는 정부 지원이 없었다. 그때 장상호씨를 전도했다. 몸이 불편하지만 자기 차량을 운전해 아침저녁으로 어린이들을 데려다 줬다. 그런데 2년이 채 안 돼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이었다. 매장지가 없어 정말 어렵게 장지를 마련했다. 비가 얼마나 많이 내리던지 상여를 메고 황톳길을 오르는 길이 참으로 힘들었다. 흠뻑 젖은 몸으로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상여를 매고 올라갔다.

그렇게 힘든 장례를 마쳤는데 그다음 주부터 그의 큰아들이 우리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사택에서 6년 반을 함께 지냈다. 아침부터 같이 식사하고 동행하며 전도했다. 기도하고 찬송하며 모든 일과를 같이했다. 영적 가족이 된 것이다. 무슨 일이든 새벽이고 낮이고 가리지 않고 서로 힘을 더했다. 그는 지금 장로가 돼 교회를 섬기고 있다.

주를 위해 헌신하면 동역자가 온다

동역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마음을 다하여 이해하고 사랑하며 헌신하지 않으면 그런 일꾼이 세워지지 않는다. 마음을 다 줘야 진정한 가족이 된다.

동역자를 얻는 것은 간단했다. 내 삶에서 주님을 향한 충성심을 보여줄 때만, 복음의 가치를 이해할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렇게 살려고 몸부림치자 한 분 한 분 그런 분들을 보내 주셨다.

몇 년 지나자 교인들이 불어났고 매일 100명에게 전도하는 일이 점점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20~30명을 매일 전도하겠다고 나서는 자원자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눈이 오면 새벽 2시에 달려와서 길에 쌓인 눈을 쓸었다. 언제든 교회 일만 생기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달려와 힘을 보탰다. 일꾼들이 세워지면서 교회는 탄력을 받아 부흥기에 접어들었다.

교회를 개척한 뒤 정말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같은 꿈, 같은 마음을 품은 일꾼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꾼은 홀로 믿음생활을 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웃을 전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전도한 사람을 주님의 일꾼으로 세워갈 수 있는 리더십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목회서신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

“일꾼을 보내 주소서”

물론 사람을 맡길 만한 일꾼, 일꾼을 세울만한 동역자를 내 곁에 세우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릭 워런 목사는 ‘새들백 교회 이야기’에서 어떤 사역에 앞서 반드시 합당한 일꾼이 먼저 나타난다고 했다.

예수님을 위해 생명을 바치기로 한 동역자가 흔치 않은 시대다. 그래도 목회자는 “일꾼을 보내 달라”는 기도만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해야 한다. 꾸준히 실천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일꾼을 붙여주실 것이다.

이수훈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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