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가끔 묻는다. 공부가 직업이면 뭐가 좋냐고. 딴 재주가 없어서 이게 직업이라고 말하기 멋쩍어서, 다른 직업은 내가 애써 뭘 하면 그게 남의 것이 되지만 공부를 하면 그게 다 내 것이 되고 생계수단도 돼 좋다고 대답한다.

학위논문을 쓸 때 지도교수들이 두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용어를 정확히 사용하라. 예를 들어 누가 지금 한국경제는 위기 상황이라고 주장한다고 하자. ‘위기’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근거와 기준이 제시되지 않으면 이 주장이 맞는지 틀리는지 판단할 수 없다(전통적인 거시경제학은 1년 중 한 국가의 실질 국내총생산이 2분기 이상 연속해 이전 4분기 대비 감소했을 때를 경기후퇴, 혹은 경기침체로 본다).

둘째, ‘비판은 쉽고 대안은 어렵다’고 말씀했다.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면 어느 이론이든지 허점을 찾아낼 수는 있다. 그러나 기존 이론의 비판은 더 나은 이론을 낳기 위한 초기작업이지 학문 활동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학생과 학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학생은 다른 사람 글을 읽고 비판하는 사람이고, 학자는 자기가 글을 쓰고 그걸 읽은 다른 사람의 비판을 들으며 사는 사람이라고 말씀했다.

문재인정부의 외교 위기론이 커지고 있다. 일본과 싸움만 하고 한·미·일 공조는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는 인도·태평양 전략과 관련해 한국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촉구했다. 화웨이 사태를 포함해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보복받을 게 뻔하다고 한다. 대통령의 삼일절·현충일 기념사를 놓고 왜 민족을 안보와 섞어서 국론분열과 혼란을 초래하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남북한 경제협력에 올인하다 민생은 지옥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나라의 미래와 안위를 걱정하는 애국심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비판론은 과연 어떤 기준에서 위기설을 주장하고 있으며, 그런 위기를 타개할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현 정부 외교안보정책 비판을 이전 박근혜정부 시절에 적용해 본다면 어떨까. 박근혜정부는 출범 이후 30개월이 넘도록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상회담도 없다는 강경 자세를 취했다. 그러다가 2015년 12월 ‘일본군 성노예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타결’에 합의해줬다. 박 대통령은 그해 9월 서방국가 중 유일하게 천안문 망루에서 중국 전승절 행사를 참관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015년 한·중 관계를 “역대 최상”이라고 평가하면서 “미·중 사이에서 러브콜을 받는 것은 축복”이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북한이 2016년 1월 제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그날 국방부는 1주일 전에 개통된 한·중 국방장관 간 긴급 전화 통화를 요청했고, 중국은 응답하지 않았다. 정상 간 통화도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한 신문은 “허구로 드러난 ‘역대 최상 한·중 관계’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박 대통령은 2015년 중국 방문 중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재개관식에 참석해 축사를 통해 “오늘 새롭게 단장한 임시정부 청사가 수많은 선열들의 고귀한 애국정신을 널리 알리고 우리 역사의 뿌리와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장이 되길 기원한다”고 말하고 방명록에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이어받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루어 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2014년 신년기자회견과 다보스 포럼에서 박 대통령은 한반도 통일은 남북한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도 막대한 경제 혜택을 창출하는 ‘대박’이라고 주장했다.

이전 정권의 외교안보 기록을 보면 ‘내로남불’은 현 정권뿐 아니라 현 정권 비판세력에도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과 장관 대면보고가 없고, 창조경제가 뭔지 잘 모르겠고, 위기가 발생했을 때 비서실장이 청와대 경내에서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전달하기 위해 직원이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헐레벌떡 뛰어가는 게 시스템이라면 그것이 바로 위기이고 지옥일 것이다.

봉영식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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