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대타협’이란 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최근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하면서 등장한 말이다.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 염태영 수원시장 등이 주도하는 이 기구는 지방자치단체 간의 현금복지 경쟁이 과도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현금으로 주는 복지정책들이 쏟아져 나와 가뜩이나 열악한 지자체 재정에 부담을 주니 일괄적으로 정리를 해서 꼭 필요한 건 중앙정부가 맡아서 전국적으로 시행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일몰시키자는 것이다. 또 지자체는 OO수당 형식의 현금복지 말고 국공립어린이집 확충이나 노인일자리 창출, 동네주치의 제도 같은 서비스복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복지대타협에 대해 상당수 지자체장이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용감한 제안”이라거나 “꼭 필요한 얘기”로 평가하는 단체장들이 많다. 언론과 전문가들의 반응도 이례적으로 환영 일색이다. 그러나 그럴듯해 보이는 복지대타협이란 말에는 따져볼 만한 지점이 적지 않다. 일단 복지대타협이란 단어부터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무슨 대단한 복지선진국이라서 복지병이라도 앓고 있는 중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복지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복지를 한창 늘리는 중이긴 하지만 복지선진국이 되려면 갈 길이 멀다.

복지대타협이 현금복지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는 점도 문제다. 복지대타협은 그 추진 세력이 의도했든 아니든 현금복지 폐기 주장으로 해석되며 현금복지에 대한 공격 논리로 이용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잖아도 현금복지는 포퓰리즘이라는 공격에 시달려 왔다. 일부에서는 그런 공격 속에서도 긴급한 복지 차원에서 현금복지가 필요하다고 보고 추진해 왔다. 서울시의 청년수당,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 서울 중구의 어르신공로수당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복지대타협은 이런 노력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물론 명백하게 비효율적이고 무책임한 현금성 복지가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한 정비는 어떤 식으로든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모든 현금복지가 문제인 것처럼 오해되도록 해선 안 된다.

현금복지는 중앙정부가 해야 하고 지자체는 서비스복지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어떤 근거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걸 지자체가 실험조차 해선 안 된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에서 인구 증가를 위한 대책으로 과감한 규모의 출산장려금이나 정착지원금을 주는 게 정말 해선 안 되는 일일까. 지자체는 현금복지를 하지 말자는 주장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현금복지가 지역별 편차를 조장하니까 안 된다는 주장에도 모순이 있다. 지금 엄연히 존재하는 지역별 격차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 이들 사이의 격차를 그대로 두고 앞으로 현금복지는 어느 동네나 똑같이 하자는 주장이 과연 공정한 것인지 모르겠다.

복지대타협을 주장하는 이들은 현금복지는 앞으로 중앙정부가 맡아서 하도록 하자고 한다. 그런데 중앙정부를 어떻게 견인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은 구체적이지 않다. 예컨대 청년수당은 필요한 현금복지 정책이니 중앙정부가 가져가서 전국적으로 시행하라고 요구한다면 정부가 순순히 해줄까. 한국의 낮은 복지는 사실 중앙정부의 의지가 약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가 이리저리 재고 있을 때 지자체들이 과감하게 복지 실험을 진행하면서 전국적인 복지 수준을 끌어올린 게 지난 10년간 한국 복지 확장의 역사였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복지대타협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이 민주당 단체장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그동안 복지 확대를 선도해온 인물들이기도 하다. 이제 정권이 바뀌었고 복지 확장 기조가 분명하니 정부를 믿고 지자체는 좀 차분해지자는 의미라면 복지대타협이란 말은 너무 나간 느낌이다.

김남중 사회2부 차장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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