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없는 일부 교수들이 정치에만 몰두해 총장이 된 후 역시 실력없는 측근들을 본부 보직에 대거 등용해 구성원들을 강압적으로 지배하면서 대학이 무너진다. 이들은 학문에는 문외한이므로 건축공사나 통계지표에만 자원을 투자하면서 학문은 황폐화된다.” 한국 대학의 현 상황인 것 같지만 실은 20세기 초 제도경제학자 베블렌이 천민자본주의로 인한 미국 대학의 위기를 비판한 것이다.

21세기 초 현재 한국 대학은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미래를 선도할 세계적 연구업적은 전무하고 건물 같은 외형에 투자하느라 재정은 고갈됐으며 교수들은 위압적 본부와 교육부의 등쌀에 위축돼 학문적으로 무가치한 단기 성과에만 골몰하고 있다. 천민자본주의가 문제였던 100년 전 미국 대학과 달리 한국 대학의 위기 원인은 관료적 권위주의다. 19세기 말에 등장한 관료제는 소수 특권층의 독단과 패거리문화로 인한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였다. 공식 규칙에 의한 의사결정, 전문성에 기반한 인사, 계층적 권한이 핵심인 관료제는 20세기 초 모든 부문으로 확산됐고 대학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사회학자 베버는 관료제가 ‘강철우리’와 같이 구성원을 억압할 것이라고 20세기 초에 예측했다. 권위주의와 결합된 관료제의 변질 때문이다. 관료제의 최상부를 점거하면 규칙을 통제수단으로 활용해 구성원들을 효율적으로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무수한 규칙과 규정들을 만들며, 자율성을 박탈당한 구성원들은 상부에서 정한 규칙에 순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인사평가 또한 상급자에 의해 결정되므로 상명하복의 권위주의가 만연하게 되며 전문성의 원칙은 뒷전으로 사라지게 된다.

선진국에서는 20세기 초에 이미 관료제가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 기반한 자발적 진리탐구가 본분인 대학에 심각한 위협임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왔다. 자율성, 수평적 협력, 학문적 전문성에 초점을 맞춘 대학운영이 핵심이었다. 반면 우리나라 대학은 관료적 권위주의가 이미 암처럼 퍼져 본부가 절대권력으로 비대해지면서 효율적 통제를 위한 다양한 규칙과 제도들을 끊임없이 만들어왔다. 본부가 다양한 전공분야 교수들의 임용과 평가, 승진을 결정하는 곳은 우리나라 대학뿐이다.

관료적 권위주의에 물든 본부는 연구와 교육을 돕기는커녕 발목만 잡는다. 교수들에게 교무처는 교육 지원 부서가 아니라 눈치를 봐야 할 권력기관이며, 연구처는 연구를 돕는 곳이 아니라 턱없이 까다로운 규제기관이다. 그 결과 국내 교수사회에선 ‘본부에 올린다’는 굴종적 표현이 당연시 돼 있다. 그런데도 본부 보직교수들은 학교를 위해 일하느라 불철주야 바쁘다고 주장한다. 각 전공분야에서 할 의사결정까지 일일이 통제하고 간섭하니 바쁠 수밖에 없다.

자율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선진 대학처럼 본부의 규모와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단과대학과 전공분야별로 완전히 분권화해야 한다. 본부 규모를 지금의 4분의 1로 줄여도 여전히 선진 대학보다 비대한 편이다. 수평적 리더십을 가진 총장을 뽑는 것이 중요하다. 총장선출 때만 되면 온갖 보직을 거친 보직중독 교수들을 중심으로 무수한 캠프가 차려지면서 대학은 정치판이 된다. 보직경력이 많다고 행정 전문가는 결코 아니다. 권위주의적 통제의 전문가일 뿐이다.

21세기 지식사회에 걸맞은 리더십을 원하면 서로 총장이 되겠다고 다투는 보직중독 교수들을 전원 배제하고 겸손하게 학자적 본분에 최선을 다해온 뛰어난 인재들을 발굴해 삼고초려해야 한다. 외국 명문대학 총장들이 대부분 노벨상급 학자이듯이 학문적으로 탁월하고, 대학정신과 시대정신에 대한 깊은 이해, 대학의 미래에 대한 가슴뛰는 비전을 가진 사람을 뽑아야 한다. 후배 교수들과 대화해보면 요즘 젊은 교수들 중에는 세계적 학자면서 대학과 시대, 사회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선진 대학 총장들이 대부분 40대에 임기를 시작하듯이 우리 대학들도 이제 관료적 권위주의에 물든 시대착오적 구세대들이 퇴진하고 젊은 학자들에게 리더십을 넘겨야 할 때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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