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석 PD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한국 드라마의 질적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CJ ENM 제공

2008년 드라마 ‘대왕세종’(KBS2)의 연출을 거들 때의 일이다. 보조 출연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가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출연진의 포즈는 하나같이 똑같았다. 두 손을 들고 뛰는 게 전부였다. 남자는 이런 연기가 탐탁지 않았다. “한 분은 박수를 막 치시고요, 다른 분은 가슴을 두드리세요. 주먹을 내지르기도 하시고요.” 출연진을 상대로 30분 넘게 설명이 이어졌다. 다른 연출가였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장면이지만 이 남자는 달랐다. 꼼꼼했고 치밀했으며 소소한 부분까지 챙기려고 했다.

이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은 현재 드라마 시장에서 최고의 PD로 손꼽히는 김원석(47)이다. 잇달아 히트작을 내놓으며 ‘스타 PD’로 자리매김한 그는 최근 신작 ‘아스달 연대기’(tvN)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 작품을 향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는데, 김원석의 명성을 아는 시청자라면 여전히 기대감을 품고 있다. 전작들이 거둔 성취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김원석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10년 ‘성균관 스캔들’(KBS2)을 연출하면서부터였다. 조선시대 성균관에서 펼쳐지는 청춘들의 성장담을 다룬 이 작품은 무겁기만 하던 종전까지의 사극과는 많이 달랐다. ‘퓨전 로맨스 사극’으로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김원석 PD가 연출한 ‘아스달 연대기’ ‘나의 아저씨’의 포스터(위 사진부터). CJ ENM 제공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드라마 마니아들 사이에서 김원석의 존재가 크게 주목받은 건 아니었다. 이듬해 CJ ENM으로 이적한 그는 2013년 ‘몬스타’(엠넷)로 호평을 받더니 2014년 ‘미생’(tvN)을 내놓으며 ‘디테일의 대가’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이 드라마에서는 화면에 등장하는 서류 한 장, 이메일 하나까지 허투루 다뤄진 게 없었다. 2016년 방영된 ‘시그널’(tvN), 지난해 내놓은 ‘나의 아저씨’(tvN)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와 호흡을 맞춘 이들은 김원석의 강점으로 디테일의 힘을 꼽는다. 나의 아저씨에 출연한 이선균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를 영화 ‘기생충’을 만든 봉준호 감독과 비교하면서 “두 분 다 장인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로 디테일이 빼어나다”고 평가했다. 미생에 출연했던 이성민은 김원석의 연출을 “초극세사 디테일”이라고 치켜세운 적이 있다. 시그널의 극본을 맡은 김은희 작가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김원석 PD는) 소품 하나하나 챙기는 건 물론이고 단역의 연기까지도 생생하게 그린다. 감정을 만들어가는 디테일이 좋다”고 말했다.

김원석 PD가 연출한 ‘미생’ ‘시그널’의 포스터(위 사진부터). CJ ENM 제공

국민일보가 10일 드라마 및 대중문화평론가 5명(김교석 김헌식 윤석진 정덕현 정석희)에게 김원석에 대한 평가를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 역시 비슷했다. 윤석진 평론가는 “디테일에 굉장히 강한데, 무엇보다 인물들 사이에 만들어지는 ‘감정의 선’을 그리는 데 탁월하다”고 말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내놓는 작품마다 거의 연전연승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며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는 것 같고 열정도 느낄 수 있다. 작은 디테일까지 모두 챙기는 게 특히 대단하다”고 했다. 이어 “아스달 연대기의 경우 안 좋은 평가를 내리는 사람도 있지만 ‘레퍼런스(참고)’가 될 만한 국내 작품이 없던 상황이지 않았냐”며 “아스달 연대기는 김원석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이 만든 작품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석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특이할 만한 부분은 그가 다양한 장르를 선보였다는 데 있다. 얼마간 명성을 쌓은 드라마 PD의 경우 특정 장르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지만 김원석은 달랐다. 사극 장르물 판타지 등 다채로운 세계를 넘나들며 수준급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정석희 평론가는 “드라마 감독들 가운데 김원석처럼 다양한 작품을 연출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작품 세계의 깊이와 넓이가 상당한 연출가”라고 평했다. 김교석 평론가는 “시나리오에 있는 정서를 영상으로 구현하는 데 탁월한 실력을 보여주는 PD”라고 말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많은 장르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시청자 기호에 맞는 드라마를 만들어낸 인물”이라며 “작품들을 보면 그가 가진 인간에 대한 믿음이나 애정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스달 연대기는 앞으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결국은 이 작품이 얼마나 시청자의 코끝을 시큰하게 만들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원석은 2016년 4월 한 영화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감정, 그것이 바로 내가 드라마를 보는 이유다. 나는 ‘1박2일’을 보면서도 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드라마를 보면서 운 적이 없더라. 눈시울이 붉어지는 순간을 드라마가 만들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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