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 강남구가 선발한 ‘예비농부’들이 지난달 30일 수서동 친환경 도시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상추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강남구는 지난 3월 친환경 도시텃밭을 개장하고 추첨을 통해 190가구를 선정했다. 김지훈 기자

도시 농업은 심리적 안정감과 신체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공동체문화 회복과 같은 사회적 기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 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 세계 여러 국가에서는 식량 위기에 대응하고 도시민의 여가 활동을 지원하는 도시농업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게다가 도시농업 육성으로 녹색 일자리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도시농업 관련 정책도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 도시텃밭. ‘도시농부’ 7년차인 오순덕(64·여)씨는 익숙한 모습으로 번호표가 적힌 텃밭으로 가 호미질을 하기 시작했다. 호미질을 하면 땅도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고 했다. 오씨의 텃밭 절반은 상추와 쑥갓이 초록빛을 자랑하고 있었고 나머지 면적에는 아직 싹을 틔우지 않은 아스파라거스와 하늘마 등이 눈에 띄었다. 텃밭에서 도보 30분 거리에 사는 오씨는 매일 이곳을 찾는다. 오씨는 “식물들은 주인 발소리를 듣고 산다. 오면 올수록 잘 자라는 게 느껴진다”며 웃었다.

오순덕(사진 왼쪽)씨가 지난 3월부터 기르기 시작한 상추를 수확하고 있는 모습이다. 친환경으로 재배한 상추는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김지훈 기자

오씨가 텃밭 재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4년 전이다. 늦둥이 자녀가 아토피가 심해 각종 약을 써도 잘 듣지 않았다. 체질 개선을 위해서 안전한 먹거리를 직접 재배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도시에 사는 오씨가 텃밭을 일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심해지는 자녀의 아토피 증상을 보며 오씨 부부는 ‘아이를 흙에서 놀게 하자’고 결심하고 주변 텃밭을 찾았다.

처음에는 집 근처에서 조그맣게 텃밭을 일궜다.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정보도 없어 재배가 쉽지는 않았다. 가장 재배하기 쉬운 상추부터 시작한 오씨는 농약을 쓰지 않고 재배하는 것에 의미를 뒀다. 그러다 텃밭 재배에 흥미를 느꼈고 올해 초 강남구에서 진행하는 도시텃밭을 신청해 텃밭 12㎡을 분양 받았다. 오씨는 “아이가 텃밭에서 직접 기른 작물을 먹고 일주일에 하루 이틀 만이라도 흙에서 뛰어놀았더니 아토피 증상이 크게 개선됐다”며 “마트에서 산 야채는 금방 시드는데 비해 농약을 치지 않고 직접 재배한 작물은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일주일이 넘어도 상하지 않고 튼튼하다”고 말했다.

모자에 선글라스를 낀 김모(49)씨는 농부의 전형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김씨는 올해 처음 텃밭을 일구기 시작한 초보 도시농부다. 차로 5분 거리 가까운 곳에서 텃밭을 일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했다. 김씨는 일주일에 세 번씩 이곳을 찾고 한 달에 두 번은 중·고등학생 자녀 둘도 함께 와서 일손을 돕는다. 매일 학교와 학원, 도서관만을 오가는 아이들을 위해 도시텃밭에 참여하게 됐다.

가족들이 함께 심고 싶은 작물도 의논해서 정했다. 김씨의 텃밭 한 쪽에는 방울토마토와 딸기, 오이가 있었다. 상추는 2~3일에 한 번씩 따줘야 하기 때문에 4인 가구가 먹기에는 양이 많다. 김씨는 “이웃, 친지들과 함께 나눠 먹는데 덕분에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김씨가 서툰 손길로 물을 주자 이광배 강남구 지역경제과 계장은 “잎이 오그라들었어요. 호미질을 하고 물을 줘야 해요”라고 조언했다. 이 계장은 이 지역 텃밭을 관리하며 참가자들에게 재배 노하우를 알려주는 일을 함께 하고 있다.

텃밭 맞은편에는 강남자원회수시설이 위치하고 있다. 소각 시설도 있어서 맞은편 텃밭 부지는 버려졌던 땅이었다. 돌이 많았던 이 땅을 강남구와 주민들이 함께 일구고 도시텃밭으로 탈바꿈시켰다.

친환경 텃밭에서만 볼 수 있는 무당벌레 모습.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먹기 때문에 친환경 재배 환경에서만 볼 수 있다. 이 곳 텃밭에서는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를 사용할 수 없고 친환경 약제와 퇴비, 모종만을 사용한다. 김지훈 기자

이 지역 도시텃밭에서는 유독 흰색 나비와 벌, 무당벌레가 눈에 띄었다. 이 계장은 “농약을 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빠르게 자라도록 약을 치는 작물들과는 달리 천천히 자라는 이곳 작물들은 영양분도 뛰어나다는 설명이다.

이곳에서는 친환경 약제와 퇴비, 모종만을 사용해야 한다. 자신이 분양 받은 텃밭이라고 하더라도 농약이나 제초제, 화학비료를 사용할 수 없고 주변 텃밭에 지장을 주는 옥수수, 호박, 고구마도 경작할 수 없다. 강남구는 식물성분만을 추출한 친환경 약재와 친환경 퇴비 등을 공급해준다. 주변 소각장에 의한 오염 관리도 주기적으로 체크한다. 흙 샘플을 채취해 중금속이나 잔류 농약 등을 검사하고 주민들과 결과를 공유한다. 올해 190가구를 모집하는 도시텃밭 신청에는 590가구가 몰리면서 공개추첨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 계장은 “도시텃밭에 참여하는 연령대도 다양해졌다”며 “젊은층은 아이들 친환경 교육을 위해 오는 경우가 많고 연세 드신 분들은 정년 퇴직 이후의 여가활동을 위해 찾는다”며 “특히 최근에는 흙을 만지고 작물을 키우면서 정신적 치유를 하는 ‘원예 치유’를 위해 텃밭에 참여하는 분들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올해 도시농부 2년차인 김혜량(52·여)씨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작물들을 보면 매일 궁금해서 이곳을 찾게 된다”며 “함께 참여하는 분들과 서로의 텃밭을 봐주기도 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시간을 보내다보니 일상이 풍요로워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 친환경 도시텃밭 전경. 3067㎡ 규모의 친환경 도시텃밭은 190가구에 1구획(12㎡)씩 배정된다. 김지훈 기자

‘서울’이라는 회색빛 도시는 농업과 가장 먼 곳으로 느껴지기 쉽지만 도시농업을 가장 적극 추진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도시농업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농업공화국(가칭)’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1년 준공을 목표로 마곡에 도시농업 체험 복합공간도 만들고 있다. 지역농·특산물을 홍보하고 체험하는 공간 외에도 씨앗은행과 체험농장, 텃밭 직거래 장터 등으로 구성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2년 “생활주변 자투리땅을 텃밭으로 조성하는 등 가구당 3.3㎡ 이상의 도시농업 실천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과거 도시텃밭은 도시 주변에 있는 체험형 주말농장 위주의 도시농업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2000년대를 지나며 작은 공간에서도 작물 재배를 손쉽게 경험할 수 있는 ‘상자텃밭’이 생겨났고 2010년 이후부터는 직접 시민들이 참여해 텃밭을 분양 받고 도시농업을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늘어나자 서울시와 자치구들은 도시텃밭 면적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2011년 29.1㏊에 불과했던 면적은 2014년 118.1㏊, 지난해 말 기준 197.5㏊로 늘었다. 서울시는 도시텃밭 면적을 꾸준히 확대해 모든 시민들이 도시농업을 실천할 수 있도록 기회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또 서울시는 시민주도형 활동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옥상텃밭이나 유휴지를 활용한 도시농업 기반을 마련하고 녹색일자리 창출에 주력할 방침이다. 도시농업 유통 분야나 도시텃밭 매니저, 퇴비·온실 기술자, 도시농업 치료사, 어린이 교육자 등 관련 분야 일자리도 다양하다. 서울시는 2015년 ‘서울도시농업 2.0 마스터플랜’을 발표한 데 이어 연내 새 마스터플랜을 확정해 발표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시농업 공간을 확보하고 동시에 관련 일자리 육성에 대비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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