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박모(50·남)씨는 10여년 전 사업부도로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4년 전부터 환청, 환시, 환후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조현병,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증세가 심해지면서 그는 부인과도 따로 살게 됐다. 박씨는 특히 “너는 쓸모없는 인간이다”라는 식의 환청 탓에 잠을 전혀 잘 수 없었다.

지난달 두 차례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던 박씨는 외래진료를 꾸준히 받으라는 의료진의 권유로 매주 한 차례 경희대병원 정신과를 찾고 있다. 집 근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담도 받는다. 증세가 조금씩 호전되고 잠도 어느 정도 자게 된 박씨는 “이제 좀 살 만하다”며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돼 강아지도 키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11일 발표한 ‘2019년 자살백서’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전년보다 4.8% 줄어든 1만2463명이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를 의미하는 자살률도 같은 기간 5.1% 감소했다.

그럼에도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2위다. 동기별로는 정신과적 질병 문제가 31.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10~30세 젊은 층에서 정신과적 질병 문제로 목숨을 끊은 비율은 40%대에 이른다.

최근 조현병 환자의 강력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 경향이 생겼지만 실제 정신질환자는 자살률이 일반인보다 8배나 높을 정도로 취약군에 속한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에 따르면 2016년 인구 10만명당 정신장애인의 자살자 수는 207.6명으로 일반인(25.6명)의 8.1배였다.

장애인과 비교해도 정신질환자의 자살률은 두드러지게 높다. 전체 장애인의 자살률(66.8명)보다 3.1배 많다. 정신장애인의 평균 사망나이는 장애인 평균 사망나이(74.2세)보다 14.9세 적다.

정신질환자의 자살 충동은 미래에 대한 비관적 생각에서 비롯된다. ‘정신장애→우울감→자살’로 이어지는 수순이다. ‘2017년 OECD 보건의료 질 통계’를 보면 2015년 기준 정신질환자가 퇴원 후 1년 안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는 환자 10만명당 700명이다. 같은 해 우리나라 전체 인구집단의 자살률(26.5명)보다 26.4배 높은 수치다.

정신질환자 중에서도 조현병 환자는 5~10%가 자살로 사망한다. 조현병 환자 중 자살 사망자의 4분의 1이 발병 1년 안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절반은 5년 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정신과적 증상이 심할 때뿐 아니라 증상이 회복돼 퇴원한 직후에도 자살위험성이 높아지므로 주의해야 한다는 게 의료계 진단이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조현병이 발병하기 전 학업이나 업무에서 성과가 좋았던 사람이 우울증을 좀 더 심하게 앓는 경우가 있다”며 “질환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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