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은 중소·중견기업이 업종을 바꿀 수 있는 통로가 넓어진다. 예를 들어 제약업체를 물려받으면서 공제 제도를 이용한 경영자가 업종을 화장품 제조업으로 변경할 수 있게 된다. 공제 혜택을 받은 기업이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여지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경영계에서 줄기차게 요구해온 ‘매출액 요건 완화’ ‘공제한도액 상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의 대물림’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영계는 충분히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11일 당정 협의를 갖고 가업상속지원세제(가업상속공제 제도) 개편방안을 논의·확정했다. 가업상속공제는 10년 이상 경영한 중소기업이나 매출액 3000억원 미만 중견기업 상속 시 과세대상 재산가액에서 최대 500억원을 빼주는 제도다. 공제를 받은 기업은 사후관리 기간에 업종, 자산, 고용을 유지할 의무를 진다. 상속세를 깎아주는 대신 일정 기간 기업 규모, 업종, 고용을 줄이지 말라는 취지다. 2016년 76곳(공제액 3184억원), 2017년 91곳(공제액 2226억원)이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았다.


이번 개편안은 사후관리 문턱을 낮췄다. 10년인 사후관리 기간이 7년으로 줄어든다. 업종변경 제한도 풀었다. 현재는 표준산업 분류상 소분류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업종을 변경하도록 허용한다. 예컨대 제분업을 하는 업체는 제빵업으로 업종을 바꿀 수가 없다. 제분업은 소분류상 ‘전문 및 전분제품 제조업’인데, 제빵업은 ‘기타 식품 제조업’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반면 개편안은 허용범위를 ‘중분류 내’로 확대했다. 제분업체가 제빵업을 할 수 있고, 식료품 소매업체가 종합 소매업체로 변신할 수도 있다. 여기에다 당정은 ‘기술적 유사성’만 인정되면 중분류 칸막이를 넘어 이동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중분류상 ‘의료용 물질 및 의약품 제조업’에 해당하는 의약품 제조업체가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 제조업, 의약품 제외’에 해당하는 화장품 제조업체로 본업을 바꾸는 게 가능해진다. 단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승인하는 경우에만 허용한다. 20% 이상 자산처분을 금지하는 자산유지 의무, 중견기업의 고용유지 의무도 일부 완화된다.

다만 당정은 매출액 기준을 올려 공제대상 범위를 넓혀 달라는 경영계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공제한도도 묶었다. 부의 대물림을 용이하게 만든다는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 김병규 세제실장은 “정부 입장은 매출액 기준을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신 당정은 상속세를 10년 또는 20년간 나눠 내는 ‘연부연납 특례’ 대상을 확대했다. 지금은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충족한 기업만 연부연납이 가능한데, 모든 중소·중견기업이 특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매출액 기준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이미 국회에는 3000억원 미만인 매출액 기준을 5000억~1조원까지 올리는 법안들이 발의돼 있다.

경영계도 불만을 표시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을 내고 “기업들이 요구한 내용에 비해 크게 미흡해 승계를 추진하는 기업들이 규제 완화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기업들이 세대를 거친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과 사전·사후관리 요건 대폭 완화 등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오주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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