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헬싱키에서 안티 린네 총리의 안내를 받으며 총리 관저를 둘러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전날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미 대화가 교착 상태라는 염려가 있지만 대화의 모멘텀이 유지되고 있고 남북 간, 북·미 간 대화를 계속하기 위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뉴시스

1년 전 싱가포르에서 시작된 비핵화 여정은 현재진행형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석 달 넘게 교착 국면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협상 판이 완전히 깨진 것은 아니다. 북·미가 두 차례 회담을 통해 서로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했고, 양 정상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협상 재개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국내 북핵 전문가들은 3차 북·미 정상회담의 디딤돌을 놓기 위한 한국 정부의 역할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봤다. 한국이 단순 중재를 넘어 북·미가 귀 기울일 만한 정교한 협상안을 제시하고, 북·미 양쪽에서 북핵 문제가 후순위로 밀리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해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11일 “북·미가 비핵화 및 상응 조치에 대한 포괄적 공정표에 합의하는 것이 중요한데 양측은 상대의 정책 전환만 요구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양측이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초안을 만들어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비핵·평화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제안했다. 정 본부장은 “통일·외교·안보 분야 전문가와 핵 과학자 및 기술자들을 망라한 TF를 꾸려 한반도 비핵화와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정교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6월 역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 한국 정부의 물밑 역할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실무협상에 진전이 없고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나면서 중재역에 한계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북·미 양쪽으로부터 원성도 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국 정부를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미 정부는 청와대가 ‘빅딜’과 ‘스몰딜’의 중간 단계로 제시한 ‘굿이너프딜’(충분히 괜찮은 합의)에 대해 공개적으로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남북 관계마저 경색되면서 한국 정부의 입지는 크게 줄었다. 정부는 남북, 북·미 대화의 물꼬라도 터보자는 취지로 대북 인도적 지원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비핵화 협상 재개의 결정적 변수가 안 될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북한은 당초 비핵화와 체제 보장을 교환하려 했는데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 제재 해제로 기대수준을 낮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며 “제재 완화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인 인도적 지원을 갖고 북한을 다시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미국 역시 ‘완전한 비핵화 전 제재 완화는 없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이 원하는 것과 미국이 주려는 것 사이에 간극이 매우 큰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핵 관리 모드로 들어가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국면에서 중요한 건 북한이 아닌 국내 정치적 이슈”라며 “향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아닌 것으로 치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은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쉽게 핵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걸 거듭 확인했다”며 “북핵 문제에서 당장 성과를 낼 수 없다면 뒤로 미루고 미·중 경쟁에 집중하는 정책 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권지혜 최승욱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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