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예비신부 손도 못 잡던 소심남… 주님께 굴복하고 담대해지다

춘천 한마음교회 간증 스토리


아버지는 해병대 UDT 장교 출신으로 불의를 참지 못하는 최고의 군인이셨다. 월남전에 참전해 10대 1의 치열한 전투를 겪기도 하셨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그런 아버지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해 당뇨병으로 쓰러지셨다. 그때부터 이사를 자주 다녔고 짜증도 심해지고 어머니와 다투는 일도 많아졌다. 때론 큰소리에 밥상을 뒤엎기도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너무 무서워 귀를 막고 방에 숨어 있었고 사소한 일에도 수시로 맞거나 혼이 많이 나면서 나는 극도로 소심한 아이로 자라게 됐다.

대학교 4학년 교생 실습을 나가 음악 수업을 할 때 일이다. 수없이 연습한 피아노 반주를 틀리면서 도저히 마무리되지 않아 더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얼굴은 빨개졌고 말까지 더듬기 시작하며 온몸은 흠뻑 땀에 젖었다. 순간 ‘이런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보다 못한 다른 교생이 반주를 대신해줘 겨우 수업을 마무리했다.

결혼할 때도 소심한 성격은 여전했다. 아버지가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수술비가 많이 들어 발령과 동시에 적자 인생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이런 나를 구해줄 천사가 나타났다. 교회에서 같이 찬양팀을 섬기고 있던 자매가 기도 응답을 받았다며 연락을 했다. 그녀와 연애를 할 때 소심한 나는 만날 때마다 ‘어디 갈래요?’ ‘뭐 먹을래요?’라는 두 가지 질문을 계속했다. 음식점에 갈 때 메뉴는 ‘아무거나’였다. 결국 자매는 “아무거나란 메뉴는 없거든요!” 했고 “신혼여행 계획은 알아서 하세요!” 하며 폭발했다.

결혼 전 부모님께 첫인사를 갔을 때 용기를 내서 “저~ 손 한번 잡아도 돼요?” 너무 황당했는지 여자 친구는 “됐거든요!” 했다. 그녀의 손은 웨딩촬영 때 처음 잡았다. 이런 소심함은 신앙생활에서도 똑같았다. 모태신앙으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복음을 한 번도 전하지 못했다. 나는 어느새 소심한 성격을 핑계로 안주하는 삶을 살게 됐고 스스로 점점 지쳐만 갔다. ‘겁쟁이였던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다 변화됐는데 왜 내 삶은 변화되지 않을까? 나도 예수님을 믿는데 왜 나는 그들과 다를까?’ 고민은 점점 깊어갔다.

어느 날 목사님께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예수님이 원래 주인이신데 여전히 내가 주인 되어 사는 것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순간 ‘반역’이라는 말이 가슴을 때렸다. 하나님은 원래부터 나의 창조자며 주인이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유는 모든 사람의 주인이 되시기 위함이셨다. 그런데 나는 내 마음대로 살았으니 바로 하나님을 배신한 반역의 죄인이었다. 나는 그대로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죄인임에도 아들을 보내 십자가에 죽게 하면서까지 용서하시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기 원하신 그 사랑 앞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 용서해주세요. 다시는 제가 주인 되어 살지 않겠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나는 이렇게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다.

나의 신분이 정확해지니 소심함은 사라지고 담대함이 부어졌다. 강원도 대표로 6학년 전국학업성취도평가 채점위원으로 가서 전국에서 모인 선생님들과 토론하며 채점기준안을 결정하는 주도적 역할을 했고 학교에서도 각종 행사를 주도하며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지난 부활절에는 온 가족이 모여 달걀을 삶고, 초콜릿과 사탕 그리고 전도지를 함께 봉투에 넣어 전교생과 교직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조용하던 시골 관사에서 우리 가족은 늘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힘차게 부른다. 마을 사람들,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마음도 하나둘 열리는 것을 보며, 오늘도 나는 말 못 하던 소심한 심장이 아니라 이제 부활의 증인으로 복음으로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다.

정훈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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