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조동철 금통위원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실물경제 침체가 심각해지면서 물가가 지속적으로 내리는 디플레이션이 우려된다면서다. 당시 이주열 한은 총재는 “말 그대로 소수의견일 뿐”이라며 “(금리 인하) 시그널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지금은 기준금리 인하로 대응할 상황은 아니다”며 시장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를 적극적으로 차단했다.

그런데 이 총재의 금리정책 방향은 12일 만에 180도 달라졌다. 이 총재는 11일 “경제 상황 변화에 따라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해 금리를 내릴 것을 강력히 시사했다. 사실상 입장을 바꾸며 든 이유는 미·중 무역분쟁 불확실성과 반도체 경기 회복 지연이다. 하지만 이들 요인은 지난달 금통위 때에도 악화할 가능성이 충분히 예견됐던 사안이다. 결과적으로 통화정책 수장이 열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금리 인하론을 강력히 공박한 셈이 됐다. 한은 총재의 금리정책 신호가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 이 총재가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면서 드는 근거들도 종잡을 수 없다. 지난해 11월 금리 인상 때 미국과의 금리 격차로 인한 자본유출 우려를 주된 이유로 대다 얼마 안 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상 중단을 공식화하자 금리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이유로 가계부채 증가 우려를 대는 식이다.

이러다 보니 한은의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는 바닥이다. 금융시장에서 장기 국채금리가 한은 기준금리(1.75%) 아래로 떨어진 게 이미 두 달이 돼 간다. 한은 총재는 ‘금리를 동결한다’고 역설하지만, 시장은 기준금리를 내리는 쪽에 풀베팅한 것이다. 이날 이 총재의 발언으로 시장이 옳았다는 게 다시 입증됐다. ‘한은이 시장을 선도하기는커녕 시장 결정을 따라가기 급급하다’는 말이 딱 맞는다. 시장에서는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이 “성장의 장기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경제의 심각성을 인정한 지 며칠 만에 이 총재가 입장을 바꾼 것을 연관짓는다. 이 총재가 정부 눈치를 보다 그제서야 ‘결단’했다는 것이다. 선진국도 부러워할 폭넓은 독립성을 부여했는데 한은의 통화정책을 놓고 이런 말이 나와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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