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집사 노릇에 푹 빠진 친구와 통화를 하고 나니 불현듯 반려동물을 키워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주인과 다정하게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보면 절로 눈길이 가며 부러운 마음이 든 지도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때뿐, 이내 고개를 젓고 만다. 키우려고 했으면 벌써 키웠을 테지만 이제까지 망설였던 건 예측할 수 없는 변수와 그로 인한 이별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다. 내가 키운 첫 동물은 병아리였다. 봄만 되면 학교 앞에 나타나던 병아리 장수가 있었다. 교문을 나서기 전 삐약삐약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은 앞다퉈 병아리가 담긴 상자로 내달렸다. 노란 솜털 뭉치들의 앙증맞은 모습은 금방 죽는다는 엄마의 주의 따위는 까맣게 잊을 만큼 유혹적이었다. 혼날 각오를 하고 병아리 한 마리를 샀다. 예상대로 엄마는 눈을 흘기며 잔소리를 했지만 산목숨을 어쩌지 못하고 키워도 좋다는 허락을 했다. 나는 작은 종이상자에 헝겊을 깔고 집을 만들어주며 애지중지했다. 병아리는 눈에 보일 정도로 쑥쑥 자랐고 몸집이 불어난 만큼 소리도 커졌다. 초봄, 바람이 제법 훈훈하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밤늦도록 시끄럽게 울어 눈치가 보인 나는 병아리 상자를 마루에 내놓고 잠들었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방문을 여니 싸늘한 공기가 훅 들어왔다. 상자 속 병아리는 두 다리를 뻣뻣하게 펴고 눈을 감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건드려도 울지 않았다. 처음 보는 낯선 모습, 태어나 처음 마주친 죽음이었다. 나는 아침도 굶고 서럽게 울었다. TV에서는 밤새 한랭전선이 내려와 기온이 뚝 떨어졌다는 일기예보가 나오고 있었다. 두 번째는 방학숙제를 하려고 산 올챙이였다. 앞다리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이 어항 밖으로 탈출한 것이다. 입구를 막아두지 않은 걸 후회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녀석을 다시 보게 된 건 그해 겨울이었다. “아이고, 아궁이 속에 들어가 못 나왔구나.” 연탄을 갈던 엄마가 불러 가보니 녀석은 척추뼈가 드러날 정도로 바싹 마른 미라가 되어 있었다. 느닷없이 목격한 죽음의 풍경은 삼십년 시간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선명하다. 그래서일까. 생명을 온전히 책임지는 것, 아직 나에게는 섣부른 일인 듯하다.

최주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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