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고(故) 이희호 여사 장례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빈소를 찾았다. 대통령 부인이자 민주투사, 여성운동가, 평화전도사로서 민주화와 인권, 남북 화해협력을 위해 애써 온 그의 삶을 추모하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가장 눈길이 가는 인물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였다. 짧은 조문이었지만 그는 고인의 영정 앞에 헌화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전두환, 김대중 두 사람은 1980년대 격동의 시기에 각각 철권통치자와 야당 지도자로 대척점에 있었다. 12·12쿠데타로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의 수장이었던 전 전 대통령은 1980년 5·17 비상계엄을 주도하고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해 군사법정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하게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미국 등 각국 유력 인사들의 구명운동 덕분에 사형을 면했고 82년 12월 석방됐다. 하지만 쫓기듯 미국 망명길에 올라야 했고, 85년 귀국 후에도 가택연금되는 등 줄곧 탄압에 시달렸다.

목숨까지 빼앗으려던 정적(政敵)이었으나 김 전 대통령은 되갚지 않았다. 1997년 12월 퇴임을 앞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반란수괴 등 혐의로 수감돼 있던 전 전 대통령을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특별사면복권시켰는데,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던 김 전 대통령의 뜻이 반영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재임 중엔 청와대로 초청해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했다. 이씨가 2년 전 자서전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김대중 대통령 시절 우리가 제일 편안하게 살았던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이 여사도 매년 명절과 전 전 대통령 내외 생일에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 내외라고 전 전 대통령이 밉지 않았겠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이 내란음모사건 때 당한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을 보며 한때 복수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정치보복이 초래할 분열과 보복의 악순환을 우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인지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전 전 대통령이 조문했고, 이번에는 이씨가 이 여사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물론 두 전 대통령이 역사적으로 화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 전 전 대통령은 여전히 5·18민주화운동 탄압에 대한 사과는 고사하고 책임마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둘의 완전한 화해는 불가능한 것일까. 사람은 떠나가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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