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연애하지 않을 권리’의 작가 엘리가 10일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 골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한 인기가요의 가사처럼 비혼(非婚) 개념이 확산하는 시대에도 ‘연애, 사랑’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럽스타그램’(러브+인스타그램)이 넘쳐나고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이 인기를 끈다.

올해 초 출판된 책 ‘연애하지 않을 권리’의 작가 엘리(29·필명)는 이런 ‘사랑 찬미’ 국가에서 ‘연애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의 목소리는 연애 강박에 지친 젊은층의 공감과 지지를 받고 있다. 엘리는 유튜브 채널, 포털 사이트 에세이 코너를 운영하며 인플루언서(대중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로 활동 중이다. 지난 10일 서울 성동구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엘리는 대기업에 다니다 퇴사한 뒤 온라인에 ‘우리가 외로운 건 사랑 때문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올렸다. “조회수가 단숨에 100만을 넘겼어요. 그만큼 20, 30대가 알게 모르게 연애·사랑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왔던 거죠.”

책의 원래 제목은 ‘사랑, 세뇌’였다. “온갖 대중매체는 사랑을 하면 행복하다며 환상을 심어요. 어릴 때부터 이를 학습한 사람들은 운명적인 사랑을 찾기 위해 분투하고 내가 외로운 이유는 제 짝을 못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스스로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관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근본 문제를 직면하기보다 관계로 도피하는 거죠.”

그가 책에서 성차별 문제 등 페미니즘을 다룬 것도 이 때문이다. “저를 포함해 많은 여성을 관계로 도피하게 만든 요인을 파고들다 보니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는 치열한 취업 경쟁을 뚫고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신입 여직원인데 좀 꾸미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다른 한편에선 ‘네가 경리도 아닌데 왜 이렇게 화려하게 꾸미냐’고 했다. “큰 포부를 갖고 입사했지만 현실은 대리 이상으로 진급한 여자 선배를 찾기 힘들었죠. 유일한 여성 임원마저 오늘 입고 온 옷, 구두로 평가되거나 ‘독종 아줌마’로 불렸어요.”

‘내가 이러려고 공부했나’라는 회의감이 들었지만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공허함을 애인에게서 채우려고 했다. 그러나 타인은 자신을 완전하게 할 수 없었다. “내가 외로운 건 사랑 때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그는 입사 2년 만에 퇴사하고 마지막 연애를 마무리했다.

그의 글은 사랑, 연애에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위로가 된다. “연애에 목매고 불행해하면서도 이를 놓지 못했던 이들이 이메일이나 SNS 메시지로 고맙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대입·취업 경쟁을 하느라 본인이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지 성찰할 기회가 적었던 게 우리 세대의 특징인 것 같아요.”

엘리는 지금 연애,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만 ‘연애의 환상’이 가득 찬 이곳에 누군가는 ‘사랑하지 마라’라고 외쳤을 때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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