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잇따라 발생한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원인을 캐면서 배터리 결함과의 연관성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민관합동 조사위원회는 지난 11일 부실한 운영·관리를 화재 원인으로 최종 지목했다. 일부 배터리 제품에 자체 결함이 발견됐지만 직접 원인은 아니라는 결론도 내렸다.

하지만 정부가 LG화학의 ESS 배터리 내 구성물질이 화재 원인일 수 있다는 전문가의 문제 제기에 부실하게 대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재 원인이 될 수 있는 물질이 실제로 화재가 난 배터리에 들어있었는지 검증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두 차례 시험에서 문제의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화재가 발생한 배터리를 직접 수거해 시험했는지, 일반 사업장에서 사용 중인 배터리를 검사했는지를 두고 정부와 민관합동 조사위원회 간에 설명이 엇갈린다.

정부출연연구소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이재갑 박사는 13일 “배터리 구성물질인 나노금속입자가 고온에서 발화해 폭발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LG화학 배터리를 사용하던 곳에서 발생한 ESS 화재는 대부분 ‘연기 발생 후 폭발’ 양상을 보였다. 나노금속입자 때문에 발생하는 화재와 동일한 특성”이라고 밝혔다. ESS 배터리는 충전과 방전을 할 때 온도가 오른다. 이때 배터리 안에 있는 도전재(導電材)의 나노금속입자가 발화하면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박사는 이런 가능성을 지난해 말부터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민관합동 조사위원회 등에 꾸준히 제기했다.


LG화학은 2017년부터 배터리의 ‘가성비’를 높이기 위해 도전재로 탄소나노튜브(CNT) 사용을 확대하겠다고 밝혀왔다. 2017년 8월 이후 일어난 ESS 화재 사고 23건 중 LG화학 배터리가 쓰인 사업장은 12곳이다. 민관합동 조사위원회는 배터리의 자체 결함이 일부 확인됐지만, 직접 화재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결함은 아니었다고 발표했다. LG화학 배터리 내에 나노금속입자가 화재 원인인지 조사했다는 내용은 따로 공개하지 않았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정부는 LG화학 배터리 내에 나노금속입자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두 번 시험을 진행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KIST와 한국산업기술시험원에 검사를 의뢰해 배터리 내에 나노금속입자가 있는지를 검사했다”며 “라만 분광 방식과 전자현미경(SEM)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나노금속입자가 발견되지 않아 화재 원인이 아니라고 자체 결론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가 조사한 배터리가 어떤 제품이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 박사는 “민관합동 조사위원회와 수차례 조사 진행 상황을 소통했는데, 조사위원회는 화재 발생 ESS 사업장의 배터리가 전소돼 시료채취가 불가능하다고 했었다”고 전했다. 반면 산업부는 “화재가 난 곳에서 여러 개의 배터리를 샘플로 수거해 조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민관합동 조사위원회의 한 위원은 “화재 사고가 난 환경과 유사한 사업장 4곳의 배터리와 2개의 신품 배터리를 조사했다”고 했다.

또한 정부는 LG화학으로부터 배터리가 어떤 물질로 구성돼 있는지 구체적인 기술 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배터리에 대한 핵심 정보도 없이 실제로 불이 났던 배터리가 아닌 다른 배터리를 시험했다면 조사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ESS 화재가 발생한 이후 LG화학은 대대적으로 배터리 교체 작업을 진행했다.

정부는 LG화학으로부터 배터리에 나노금속입자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확인을 받았기 때문에 민관합동 조사위원회의 시험 결과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LG화학은 CNT가 화재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정부와 입증했다고 해명했다. LG화학 관계자는 “ESS 배터리 도전재로 CNT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카본블랙 도전재만 쓰고 있다. 이런 내용을 담은 공문과 기술 자료를 산업부에 수차례 보내 문제 없다는 확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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