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과 이주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난달 20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아트홀 앞에서 ‘이주노동자 차별철폐 및 노동권 실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글 싣는 순서
<1부 : 더불어 살아가기 위하여>
<2부 : 공동체 균열 부르는 ‘신계급’>
<3부 : 한국을 바꾸는 다문화가정 2세>
<4부 : 외국인 노동자 90만명 시대>
<5부 : 탈북민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법>


태국인 A씨는 2014년부터 4년간 일한 경기도의 한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수시로 사장에게서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 ‘말투가 마음에 안 든다’ ‘일처리가 느리다’ 등 주먹이 날아오는 이유는 다양했다. 하지만 A씨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사장이 그의 목줄을 쥐고 있었다. 현행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사업주의 허가 없이 외국인노동자가 사업장을 옮길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외국인노동자들은 부당한 처우를 받고도 사업장을 옮기기 쉽지 않다.

폭행이 두려워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더니 사장은 A씨가 사업장을 이탈했다며 신고했다. 그는 고국의 가족을 생각하며 고통을 겨우 참다가 공장이 재정난을 겪으며 문을 닫은 덕에 최근 다른 직장으로 옮길 수 있었다.

외국인노동자 90만명 시대. 국내 공장과 건설 현장, 농장 등 각 생활전선에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이방인을 찾는 일은 새삼스럽지 않다.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등의 압박에 사업주들의 외국인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는 오히려 더 높아진 상황이다. 이처럼 우리 산업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지만 여전히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행위와 범죄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충남의 한 전자부품 공장에 근무 중인 베트남인 B씨는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해 밤 8시까지 하루 15시간 일하는 건 다반사다. 정해진 출퇴근시간이 없고 주말에 일을 해도 월급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어서 못하겠다고 했더니 고용주는 B씨의 머리를 때리며 “베트남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B씨는 “많은 외국인노동자들은 일을 하다가 사소한 실수만 해도 심한 질타를 받고 구타 당한다”며 “그러나 약자이기에 대부분 가만히 당할 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가 지난 1월 외국인노동자 3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생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13.1%(42명)는 직장에서 폭행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폭행 가해자는 사장(31.3%)이 가장 많았으며 한국인 노동자(29.2%)가 뒤를 이었다. 폭행당한 이유는 ‘일하다 실수해서’가 33.3%로 가장 많았다.

여성 외국인노동자 상당수는 성폭력 피해에 노출돼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실시한 ‘제조업 분야 여성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385명 가운데 45명(11.7%)이 성희롱·성폭행을 겪었다고 대답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같은 해 농업 분야의 여성 이주노동자 202명을 대상으로 성폭력 실태를 조사했을 때도 피해 경험이 있다고 밝힌 노동자가 12.4%(25명)에 이르렀다.

이처럼 범죄에 노출돼 있음에도 외국인노동자들의 신고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체류 자격의 불안정성은 물론 고용 관계상 불이익 등을 염려한 것으로 보인다. 2013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최근 5년 동안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이주노동자의 ‘직장 내 성폭력’ 피해 건수는 19건(피해자 22명)에 불과하다.

현행 고용허가제도상 외국인노동자가 성폭력 피해를 이유로 사업장을 옮기려면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16일 “성폭력 피해 입증은 내국인에게도 어려운 일”이라며 “현재 상황에서 직장에서 쫓겨나는 등의 위험을 감수하고 신고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외국인노동자가 성폭력 피해를 신고해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미약한 편이다. 앞서 고용부에 접수된 성폭력 피해 사건 19건 가운데 17건은 사업주나 관리자가 가해자로 지목됐지만 구속된 사례는 동료 외국인노동자가 가해자였던 1건뿐이다. 8건은 사업주가 과태료를 부과받거나 피해자가 사업장을 옮기는 선에서 끝났다.

이주공동행동 관계자는 “현 제도하에서는 고용주가 외국인노동자를 일방적으로 통제하고 억압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임금체불과 폭행, 성폭력 등을 하는 고용주에 대해서는 아예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는 고용허가서를 재발급하지 않는다거나 높은 액수의 벌금을 물리는 등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노동자 상당수는 산업재해보험 등 보장받아야 할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과 법무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18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에 참여한 외국인 취업자 88만4000명 중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산재보험 가입자는 62.4%에 그쳤다. 또 외국인노동자 상당수가 고용보험 의무가입 예외 대상인 탓에 고용보험 가입률은 35.6%에 불과했다.

당시 조사에서 ‘지난 1년 동안 병원에 가지 못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0.8%가 ‘치료비가 부담스러워서’라고 답했다. 부상을 경험한 방문취업자나 재외동포 중 치료비를 건강보험으로 처리한 경우는 4.3%에 불과했다. 사업주가 치료비를 전액 부담(37%)하거나 본인이 치료비를 전액 부담(25.7%)한 경우가 많았다.

고용부가 밝힌 이주노동자 사망자를 포함한 재해자 수는 2013년 5586명(사망자 88명), 2014년 6044명(사망자 85명), 2015년 6449명(사망자 103명), 2016년 6728명(사망자 88명)이다. 2017년에는 전체 재해자 수는 다소 줄었지만(6392명) 사망자는 107명으로 늘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많은 외국인노동자들이 휴식없이 일하고 범죄에 노출돼도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며 “노후화된 기계와 열악한 근무 여건 탓에 산업재해도 빈번히 발생해 장애와 상처을 갖게 되는 노동자도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대개 법과 제도는 시간이 지나면 합리적인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이 상식인데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처우는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다”며 “한국 정부는 외국인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홍엽 조선대 법대 교수는 “외국인노동자 대부분이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꺼리는 근로현장을 찾아 일하고 있다”며 “그들의 노동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인력 유출을 피할 수 없고 생산력이 저하돼 결국 국내 산업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열악한 근무·숙식 환경 등을 엄격히 평가하는 제도를 만들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외국인노동자들이 근무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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