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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6월 19일] 평화의 사신이 되어


찬송 :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90장(통 98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고린도후서 5장 11~21절

말씀 : 평화의 사신은 자신이 위험한 줄 알면서도 평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적진으로 들어가는 임무를 맡은 사람을 일컫지요. 그래서 그들은 위험을 무릅써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기에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적진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앞세우고 이 세상에 평화의 사자로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써 하나님께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자들을 구원하기로 아들과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섬멸하지 않으시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평화의 사신들을 이 땅에 보내고 계십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 사도는 주의 두려우심을 아는 자로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장막을 짜면서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었지요. 그러면서 고린도 교회와 인격적이며 격의 없는 친분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지금 고린도 교인들이 올바른 신앙에서 떠나 있는 상태에서 여전히 옛날의 관계를 기억하며 바울을 대하려는 데에는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도가 말하는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은 율법주의에 오염되어 실제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멀어진 율법주의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도가 ‘정색하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을 때 고린도 교인들 중 일부는 그가 미쳐서 그렇다고 심하게 비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들과 가졌던 좋은 관계를 깨뜨리고 싶은 이유가 없었겠지요. 그러나 교회의 특징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말씀이 모든 것을 끌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일방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이것만이 교회를 온전하게 치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새로운 백성의 창조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새 사람을 만드신 것이기에 우리는 서로를 더 이상 육체로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바울 사도는 이제 평화의 사신인 우리가 감당해야 할 역할에 대해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에 있는 우리 인간을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지요. 율법의 역할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에 있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러나 율법은 결단코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지는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과 이 세상의 화목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어도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죄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옛 생활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는 조건 없이 부어질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이 기쁜 소식을 위해 아들을 평화의 사신으로 보내셨지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 화목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기도 : 아버지 하나님,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의 두려우심을 아는 자로서 평화의 사신이 되어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며 복음을 전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이에스더 목사(요나3일영성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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