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선보다 개인의 권리가 먼저인 권리사회의 폐해 심화
법이 수단이 아니라 그 목적이 되는 율법주의도 횡행

분쟁 해결에서 권리뿐 아니라 공동체의 善도 고려되는 ‘善이 있는 정의론’이 대안


갈등과 분쟁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갈등과 분쟁은 의견대립에서 시작되고, 의견대립의 뿌리는 가치관이다. 이질적인 종교적 배경에서 자란 사람들처럼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가치관을 가진 당사자 사이에 분쟁이 생긴 경우에는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경우의 해결책으로 각자의 가치관은 토끼의 간처럼 떼어내 ‘선반 위에 올려두어야(bracket)’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 의미는 종교, 지역, 가족 등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것은 분쟁 해결에 방해가 되므로 ‘무지의 베일’로 가려 사람들이 자신의 ‘연고(緣故)’를 내세우지 못하도록 만든 다음 옳음과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우리는 ‘선(善)이 없는 정의론’이라고 한다. 그 핵심은 이미 가치관에 영향을 받는 선(좋음)의 내용이 법(규칙)에 반영돼 있으므로 법에 따라 판단만 제대로 하면 선을 동원하지 않아도 정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선이 없는 정의론’에서는 법을 정의의 판단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분쟁 해결이 법에 근거한 ‘권리와 의무의 존부’로 귀결된다. 권리가 있다고 판정받은 사람은 그에 대응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에게 의무 이행을 요구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정의론에서는 법에 근거한 권리의 보유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이로 인해 사회는 ‘권리사회’로 되어 간다. 권리사회의 정점에는 법정이 있고, 법정을 보면 권리사회의 전형을 엿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법정 풍경을 통해 권리사회를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권리사회는 공동체의 선보다는 개인의 ‘권리가 우위에 있는 사회’다. 분쟁이 자치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법원으로 가야 하므로 법원의 사건 폭증은 필연적이다. 법정은 권리 획득의 게임장으로 전락한다. 한쪽이 권리를 주장하면 다른 쪽은 다른 권리로 맞서고, 최후에는 ‘인권’을 내세운다. 하지만 권리 간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경우는 분쟁 해결이 어렵다. 이 경우 법의 해석을 통해 권리의 우열을 정하면 된다고 하나 시대가 바뀌면 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종국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둘째, 권리사회는 ‘제로섬 게임 사회’다. 법정에서 법관의 판결로 최종 해결을 꾀할 경우에는 (전)승 아니면 (전)패가 초래된다. 소송에 잘못 대응했다가는 패가망신할 수도 있다 보니 당사자는 정의의 실현보다 분쟁의 승리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위증과 거짓말까지 양심의 가책과는 상관없이 동원한다. 법관을 분쟁의 제3의 당사자로 끌어들여 판결에 대한 비난이 법관을 향하도록 만든다.

셋째, 권리사회는 ‘법이 목적이 되는 사회’다. 옳음과 그름은 법에 대한 저촉 여부로 판가름나므로 모든 분쟁에 양보 등을 통한 당사자 간 자율적 해결보다 강제적 법을 통한 해결이 앞선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공동선을 이루는 덕의 실현을 통한 해결보다 권리의 근거가 되는 법을 통한 해결에 과하게 의존한다. 이는 법을 그 토대가 되는 선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게 한다. 성경이 엄중 경계하고 있는 ‘율법주의’다. 그 결과는 사람보다 법이 우선시되고, 분쟁 해결이 진실 발견이 아니라 추상적인 법 개념의 해석론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이해관계에 따라 법 해석에 대한 권위를 부정하므로 법관의 권위는 날로 추락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법을 상세히 규정하나 그 규정을 둘러싸고 새로운 해석 충돌이 일어나므로 법 규정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간다. 넷째, 권리사회는 ‘X와 Y의 사회’다. 법정에서는 당사자가 원고, 검사, 고소인, 고발인, 피해자(X)나 피고, 피고인, 피고소인, 피고발인, 가해자(Y)의 이름으로 만난다. 당사자의 연고가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당사자를 완전 ‘무연고적’ 상태로 만들면 분쟁의 배경이 되는 맥락을 읽지 못하게 되어 사건 처리가 획일화된다. 예컨대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교육과정에 충돌이 발생한 경우 그들의 사회적 공간과 지위를 배제한 채 인간 대 인간으로만 사건을 처리하는 것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서로 모르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 발생한 폭행 사건을 처리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우리 사회 저변에 권리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공동체가 해체되고 개인주의가 고도로 심화되는 상황에서 권리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이를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 문제점들이 사회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분쟁 해결에 있어 법의 토대가 되는 선(善)도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는 ‘선이 있는 정의론’에서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교사와 학생 사이에 분쟁이 발생한 경우 ‘학교라는 공동체의 목적과 그 구성원들에게 무엇이 좋은지(공동선)’를 고려하게 되면 교권과 학생권의 우열 관계를 판단하지 않고도 우리는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권리사회의 문제에 대한 대안은 선과 덕의 회복이다.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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