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서 전쟁 승리의 힘 달라 기도 했다”

새에덴교회, 6·25 참전 용사 전사자 가족 등 52명 초청

미 제1해병사단 소속으로 1950년 11월 장진호전투에 참전했던 필립 샤틀러 예비역 중장이 17일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순국선열에 헌화한 후 분향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69년 전 한강 위엔 파괴돼 제구실을 할 수 없는 다리뿐이었습니다. 지금은 이 강 위에 32개의 다리가 있고 1개가 더 지어지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벽안의 미 해병대 예비역 중장은 전쟁 후 폐허가 된 땅에서 일궈낸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한강 위 다리 수’로 표현했다. 17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방명록에 꾹꾹 눌러 쓴 그의 이름은 필립 샤틀러(92). 1950년 11월 27일 미 제1해병사단 소속 중위로 한국 땅을 밟았던 참전용사다.

당시 그가 소속된 부대의 임무는 중공군 7개 사단 규모가 포위망을 형성한 장진호 계곡에서 부상당한 군인과 난민들을 철수시키는 것이었다. 장진호전투의 최전선에서 흥남철수작전(흥남에서 배편으로 10만여명의 피난민을 구출한 군사작전)의 교두보를 만들었던 셈이다.

샤틀러 중장은 “대한민국은 미국이 그동안 해외에서 군사작전을 펼쳤던 곳 중 가장 큰 성과를 낸 국가”라며 “지금까지 다섯 차례 한국을 방문했는데 올 때마다 목숨 걸고 이 땅의 국민을 지킨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분단돼 있는 한반도에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경제 문화적 발전상을 바라보면서도 아직 통일 한국 소식을 접하지 못한 게 유일한 아쉬움”이라며 왼쪽 가슴에 달린 훈장을 매만졌다.

샤틀러 중장은 이날 헌화를 위해 51명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및 전사자 가족들과 현충원을 찾았다. 그는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가 13년째 민간외교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초청행사의 올해 최고령 참가자다. 방문단 옆에는 함께 초청된 전 미 연방 하원의원들도 나란히 섰다. 현충탑 앞에 도열한 방문단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후 소강석 목사와 샤틀러 중장, 도나 에드워즈 전 연방 하원이 분향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휠체어에 앉아 순국선열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던 윌리엄 포레스트(87·사진)씨는 상병 시절 기관총 사수로 장진호전투에 참전했던 기억을 털어놨다.

“미군의 열 배 넘는 중공군 병력이 포위섬멸 작전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기관총을 발사하며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데 귀가 찢어질 듯한 폭발음이 들렸고 정신을 차려 보니 수류탄 파편이 오른쪽 복부에 박혀 있었습니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지요.”

부상을 입은 채 간이 의무실에 누워 있을 때 눈 부상을 입고 치료받던 한 병사가 다가왔다. 포레스트씨는 “가톨릭 신자로 알고 있었던 전우였는데 의무실에서 손을 맞잡고 뜨겁게 기도했다”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이 땅이 평화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힘을 달라는 내용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부상당한 지 일주일 만에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 기관총을 잡았다.

두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군인이었고 내가 받은 명령을 이행해야 했을 뿐”이라며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전쟁 없는 땅에서 자랄 수 있기를 기도하겠다”며 차량에 올랐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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