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난당한 문화재를 추적하고 회수하는 일을 하는 한상진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이 지난 13일 대전정부청사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한 반장이 직접 찾아내 최근 공개한 보물 제1008호 만국전도의 모습. 이병주 기자

2018년 초 한상진(39)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은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4장의 사진도 첨부됐다. “한 반장이 말한 지도 같은데 확인 좀 해봐.” 7년여를 찾아가 밥 먹고 술 마시며 신뢰를 다진 정보원이었다. 사진 중엔 ‘시장에 나오면 비밀리에 연락 달라’고 보여준 만국전도(보물 제1008호)도 있었다. 1994년 함양 박씨 문중에서 도난당한 조선시대의 세계지도다. 한 반장은 “모든 문화재가 중요하지만 보물급이다 보니 막 흥분됐죠”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흥분도 잠시, 지난한 검증과 설득, 범인과의 기싸움이 이어졌다. 사진이 건너온 경로를 되밟았고, 지난해 여름부터는 범인의 지인들을 탐색하며 정보를 흘리기도 했다. 심리적 압박을 주기 위해서다. 지역의 문화재 종사자들에겐 “소중한 문화재가 불법거래 되고 훼손되면 안 되지 않냐”고 설득했고, 문화재사범 A씨(50)를 만나선 “먼저 내놓으면 정상참작을 해보겠다”고 회유하기도 했다.

A씨는 “갖고 있지 않다”며 입장을 번복했고, 한 반장은 결국 압수수색을 위해 경북 안동의 A씨 집 근처에서 잠복에 들어갔다. 지난해 11월 28일 경찰과 함께 A씨의 집과 식당을 급습했지만 A씨와 지도는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 반쯤 수색 후 한 반장은 도저히 사람이 못 들어갈 듯한 가구 사이에서 A씨를 발견했고, 만국전도를 숨긴 위치를 자백 받았다. 식당 정수기를 치우고 벽지를 뜯어내자 수차례 접힌 만국전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상진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이 직접 찾아내 최근 공개한 보물 제1008호 만국전도의 모습.

지난 13일 대전정부청사 문화재청 사무실에서 한 반장을 만났다. 그는 만국전도 외에도 도난된 양녕대군의 친필 목판 6점과 어사 박문수의 고령 박씨 집안 간찰(편지) 1047점 등을 회수했다.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은 문화재보호법·매장문화재보호법과 관련해선 사법권이 있는 ‘문화재 경찰’이다. 그만큼 일도 고되고 험하다. 한 반장은 “해저도굴 사건 때는 추운 바다에서 잠복하고 미행도 하고, 몇시에 나가서 어느 항으로 나가는지도 봐야 하고…”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도 했다. 그는 “일본 불상을 회수했을 땐 지역 깡패와 몸싸움도 있었다”며 “문화재사범이 돈이 없어서 깡패두목에게 그걸 맡겼고, 깡패들도 장물인 줄 알면서 받았다”고 말했다.

문화재를 볼모 삼아 협박하는 이들도 있다. 한 반장은 “수사망을 좁혀나가면 ‘나 이거 태워버릴 거야’ 협박도 해요”라며 “저희는 문화재 회수가 최우선이잖아요. 사람 처벌해도 문화재 못 찾으면 말짱 꽝이죠”라고 했다.

어렵게 도난 문화재를 회수해 주인에게 돌려줄 땐 뿌듯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한 반장은 “어사 박문수가 주고받은 간찰을 찾아서 돌려드렸는데 할아버지께서 한없이 눈물 흘리며 고맙다 하셨어요. 후손으로서 유품을 잃어버렸다는 죄스러움과 이제야 찾았다는 기쁨처럼 보여서 마음이 안타까웠죠”라고 말했다.

2018년 12월 말 기준, 한국에는 2만4079점의 도난문화재가 있다. 1985년부터 2018년까지 3만677점이 도난당했고 6598점(21.5%)만 회수됐다. 도난 문화재 중에는 국가지정문화재 12점(국보1, 보물11)도 있다.

하지만 도난문화재 회수 인력은 전국에 2명뿐이다. 한 반장과 이제 3년차인 후배 한 명이 있다. 인력부족을 경찰의 공조로 메우지만 한계가 많다. 업계가 폐쇄적이라 오랜 신뢰관계 구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반장은 “문화재 거래는 암암리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업계 사람을 계속 만나서 차도 마시고, 진솔한 얘기를 들으려고 술도 자주 마신다”며 “다행히 술은 좋아하는 편”이라며 웃었다. 지난 7일에는 한 반장의 딸이 태어났지만 아직까지 출산휴가를 쓰지 못했다. 그는 “최근에는 신안 문화재 회수 때문에 정신 없었다”며 “아내에게 많이 미안할 뿐”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한 반장은 “고되지만 늘 뿌듯하다”면서도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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