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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에서-배병우] 미·중 갈등, 이젠 ‘블랙리스트 전쟁’

미, 수출통제 명단 올리자중국도 맞대응… 삼성전자,하이닉스 선택의 시간 임박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단순한 무역전쟁이 아니라 그 본질은 기술전쟁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진 날이 지난 5월 16일이다. 이날 미국 상무부는 차세대 이동통신 5G 선두기업인 중국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수출통제 기업 명단(엔티티 리스트·entity list)’에 올렸다고 발표했다. 엔티티 리스트는 미국의 ‘무역 블랙리스트(black list)’로, 미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이 미국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거나 위험요소가 많다고 생각하는 개인, 기업, 연구기관, 민간단체 등을 등록해 놓은 목록이다. 앞으로 미국 기업들은 화웨이와 거래를 할 경우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상무부가 지칭하는 거래는 부품 등 물리적 상품의 판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구글 앱 같은 소프트웨어, 특허 사용허가권 등 지적재산권 대여도 포함된다. 이번 조치로 화웨이는 사실상 미국 기업이 공급하는 부품과 지적재산권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이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퀄컴 등이 화웨이에 대한 기술사용 계약을 해지하거나 거래 중단을 발표했다.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 일본 반도체업체 파나소닉과 히타치도 동참했다. 중국 최대 IT 업체 화웨이를 글로벌 공급사슬(GVC)에서 배제해 고사시킨다는 미국의 전략이 본격화됐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미국의 블랙리스트 발표 2주 뒤인 5월 31일 중국 상무부는 중국 기업을 상대로 봉쇄 및 공급 중단 조치를 하거나 중국 기업의 정당한 권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외국기업·조직·개인을 ‘신뢰할 수 없는 실체’ 명단에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따라 화웨이와 거래를 끊는 외국 기업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보복하겠다는 선언이다. 미·중 갈등이 ‘수출통제 리스트(블랙리스트) 전쟁’으로 전화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도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화웨이와 계속 거래할 수 있는지 여부는 공급되는 반도체에 미국의 지적재산권이 기여하는 부가가치의 비중이 상품 가치의 25%를 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25%를 초과하는 경우는 명백한 수출 금지에 해당한다. 대만 TSMC는 그 비율이 25% 밑이라는 결과에 따라 화웨이에 반도체 부품 공급을 계속할 수 있다고 판정된 바 있다. 하지만 미국 지적재산권 기여도가 상품 가치의 25%에 미달한다고 하더라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화웨이에 반도체를 자유롭게 공급할 수 있다고 판단할 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고려대 경제학과 김동원 초빙교수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미국 정부가 쉽게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삼성과 하이닉스의 반도체 공급을 묵인할 경우 글로벌 공급사슬 통제를 통해 중국의 생산과 개발 역량을 압박하는 효과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통상관계자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미·중 기술전쟁의 와중에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는 식의 분석은 매우 단견”이라면서 “미국 정부의 공급 금지 조치로 미국 기업들이 매출 감소 등 막대한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는데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반사적 이익을 얻는 것을 허용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보복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극단적으로 삼성전자를 화웨이와 마찬가지로 수출통제 리스트에 추가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두 기업이 미국 지적재산권에 의존하지 않으면 최고의 기술개발 역량을 확보하기 어려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중국 시장을 포기하고 나머지 세계 시장 및 기술을 선택하는 게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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