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9일 새벽 3시, 강원도 춘천의 아파트에서 여성 강모(29)씨의 주검이 발견됐다. 그날은 강씨에게 꿈같은 날이었다. 비정규직이던 그를 위한 회식 자리가 마련됐다. 기분이 좋아 술도 꽤 마셨다. 엄마의 빚을 갚겠다고 대학원까지 휴학하고 얻은 직장이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이날은 악몽이 됐다. 직장 상사는 술에 취한 강씨를 자기 아파트로 끌고 갔다. 강제로 입을 맞춘 뒤 속옷 안으로 손을 넣었다. 강씨는 베란다로 도피했고 떨어져 죽었다. 난간에는 그가 매달렸던 흔적이 남았다. 꾹 참고 버텼다면 그래도 살았을까.

강씨가 ‘미처 강간당하기 전에 사망한 덕에’ 피의자는 강간치사 혐의를 피하게 됐다. 그는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발뺌하다가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실토했다. 검찰은 그에게 강제추행 혐의만 적용했다. 물리적 강간은 일어나지 않았고 추행이 벌어진 상황과 떨어져 죽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는 입증할 수 없다고 했다. 1심은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법원 양형 기준에 이런 강제추행의 권고 형량이 최고 4년6개월임을 감안하면 엄한 판결인 것은 맞다. 하지만 강간치사의 형량은 최소 10년이다.

검찰로선 강제추행으로 기소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다. 강간치사는 명확히 입증하지 못하면 무죄가 선고될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소극적이지만 분명한 죄목으로 기소했으리란 것이다. 아무튼 이런 판결이 나오고 나서야, 판결을 받아든 피해자의 엄마가 인터넷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나서야 사람들은 깨달았다. 피해자 입장에선 그 또한 강간이었으며, 우리는 추행범을 잡은 게 아니라 강간범을 놓친 거라는 사실. 그리고 얼마 후 서울에서 다시 일이 터졌다.

지난달 28일 오전 6시20분쯤 조모(30)씨는 서울 신림동에서 귀가하는 여성을 쫓아가 집에 침입하려 했다. 아슬아슬하게 현관문이 잠기자 강제로 열고 난입할 듯이 문고리를 잡아 흔들었다. 한참을 그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경찰은 그를 강간미수 혐의로 송치했다. 당초 주거침입만 적용하려 했는데 그러기엔 몰아친 분노가 컸다. 사람들은 그가 무슨 목적으로 쫓아갔고 왜 현관문을 열려 했는지 분명하지 않으냐고 외쳤다. CCTV 영상을 퍼나른 것도, 도주했던 범인이 제 발로 경찰서에 가게 한 것도 이 분노가 해낸 일이었다.

사건 초기에 경찰은 그가 강간을 시도하려 했을지, 물건을 훔치려 했을지 알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과거 판례만 놓고 보면 이런 시각이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한 것은 여론을 반영한 결과일 테다. 법조계에서는 무리하게 혐의를 적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강간미수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범인이 강간을 의도했다는 객관적 증거를 더 찾아내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강간미수로 처벌받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오히려 크다고도 한다. 그만큼 국민의 법 감정에 비해 실제 법이 적용되는 범위는 좁다. 그렇다고 춘천 추락사처럼 최소한의 죗값이라도 치르게 주거침입 정도만 적용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찰이 여론을 의식했든 안 했든 이 사건에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한 건 ‘뭐라도 변한 것’이다. 일각에선 여론의 눈치를 너무 봤다고들 하지만 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다. 경찰은 “피해자의 공포감을 충분히 헤아린 판단”이라고 했다. 의미 있는 또 다른 움직임도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주거침입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수정하기로 했다. 스토킹법 제정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여성들은 경험을 토대로 신림동 사건을 강간 의도가 담긴 범행으로 인지했다. 이들이 왜 이토록 분노하는지 그 배경에 법이 집중했으면 한다. 그저 재물을 훔치겠다고 그 여성의 현관문을 잡아당겼을 리 없다. 값진 물건이 있어 보이지 않는 작은 원룸, 그것도 여성 혼자 사는 원룸을 선택해서, 그의 귀갓길을 미행하다가, 문이 열리는 순간을 노린 뒤, 실패하고도 10분가량 집 앞을 서성일 절도범은 없다. 모든 공간이 두려웠을 여성은 경계심을 허물 수 있어야 할 집에서마저 강간 위협을 당해야 했다. 실제 강간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웬 망상이냐고, 적어도 법이 그렇게 물어선 안 된다. 성범죄는 오로지 가해자의 행위에 기인한다. 예방을 권고하기보다 처벌에 집중해야 하는 까닭이다. 우리는 지금 법을 향해 성인지감수성을 묻고 있다. 이런 요구를 할 수 있게 된 이 변화가 반갑다. pmj@kmib.co.kr

박민지 기자

박민지 온라인뉴스부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