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향기] 내 몸에 밴 영성 냄새일까 향기일까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에 냄새 또는 향기의 추억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되는 것이 ‘프루스트 현상’이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어느 겨울날 홍차에 마들렌 과자를 적셔 한입 베어 문 순간, 어릴 적 고향에서 고모가 내어주곤 했던 마들렌의 향기를 떠올렸다. 그 향기의 기억은 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집필로 이어졌다. 잠 못 이루는 밤, 주인공은 마들렌의 향기를 통해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기억의 호명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깜짝 놀라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그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민음사) 중에서)

이후 향기가 기억을 끌어내는 것을 ‘프루스트 현상(Proust phenomenon)’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냄새는 기억을 소환한다. 냄새는 경험하는 순간의 감정을 남긴다. 가령 낙엽을 태우는 냄새는 누군가에겐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궁이에서 구워주던 군고구마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군고구마를 먹었다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을 받던 따스한 감정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한다.

또 방금 깎은 잔디에서 풍기는 풀냄새는 누군가에게 어린 시절 동산에서 뛰어놀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뿐 아니라 맛있는 김치부침개 냄새, 딱풀접착제 냄새, 신문지 냄새, 엄마의 화장품 냄새, 햇볕에 뽀송뽀송하게 말린 빨래 냄새 등, 나만 기억하는 냄새도 있다. 그 냄새가 나면 떠오르는 강렬한 기억도 있을 것이다.

냄새는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기운을 뜻하고, 향기는 꽃이나 향수 등에서 나는 좋은 냄새를 의미한다. 향기는 좋은 냄새에 주로 쓰이지만, 냄새는 더 넓은 뜻을 가진다. 냄새는 과거의 경험을 상기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시각이나 청각 등 다른 감각적 신호보다 더욱 강력하다.

냄새는 존재감, 자아정체감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각자의 냄새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고 마치 지문과 같이 그 사람의 존재를 증명해준다. 온종일 고된 노동을 하면 몸에서 땀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청소근로자가 내린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파스 냄새도 삶의 흔적이다. 냄새로 당시의 사람의 상황이나 형편이 드러나기도 한다.

최근 ‘제72회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에서 말하는 냄새는 누군가에겐 코를 틀어막고 싶은 반지하 냄새, 지하철 타는 사람들의 냄새 등 집단의 냄새이다. 냄새는 삶의 체취 그 자체이다. 봉준호 감독이 말했듯 부자와 가난한 자, 그 사람들이 서로 냄새를 맡을 기회가 없다. 비행기를 타도 클래스가 나뉘고, 일하는 곳과 가는 곳이 다르다. 동선이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냄새는 우리사회의 계급을 구분하는 일종의 상징성으로 작용한다.

상처에서 향기 나는 사람

사도 바울은 신앙인들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불렀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목회자들은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드러내는 곳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 ‘나’라는 인간적인 냄새만 풍기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화가 조르주 루오는 “의인은 향나무 같아서 그를 찍는 도끼에도 향기를 묻힌다”라고 말했다. 향나무는 도끼에 찍혀도 향을 품어낸다. 그리스도인의 향기는 시련과 박해 속에서 더 아름다운 향기를 품어 낸다.

상처에서 향기가 나는 사람이 있다. 수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닉 부이치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저를 괴롭힌다면 똑같이 괴롭힐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그들에 대한 연민을 품고 있거든요. 저를 괴롭히더라도 사랑한다고 말하죠. 그들이 ‘뭐?’ ‘왜?’ 라고 놀립니다. 그래도 저는 ‘사랑해 그리고 너는 충분히 멋진 사람이야 나를 괴롭힐 필요가 없어’라고 말했더니 괴롭힘이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팔다리 없이 태어났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전하는 닉 부이치치의 이야기이다.

그의 생각은 살아계신 주님과의 관계를 통해 가능하다. 개인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닉 부이치치에게서 나오는 향기는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 향기이기 때문이다.

향기는 소리없이 움직인다. 향기는 머물러 있는 곳에 선한 영향을 미친다. 성경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2:14)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목회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함과 깊은 교제, 만남을 통해서 드러나는 삶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즉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통해 드러나는 삶의 방식과 성품이 향기이다.

좀 더 나아가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된 삶을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2)

생선을 싼 종이에서 비린 냄새가, 향초를 머금은 종이에서 향기가 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에 따라 코를 막아야 하는 냄새가 될 수도, 아름다운 향기가 될 수도 있다. 같은 환경 속에 살아도 독기를 품고 분노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향기를 품기 어렵다.

반면 온화한 마음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품으면 향기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향기가 될 수도 악취가 될 수도 있다. 나의 영성은 향기인가?

향기에 하나 더
“예수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발랐다”


성경에는 향기를 통해 인간의 마음과 몸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식물이 나온다. 바로 나드 향유와 우슬초다. 나드는 히말라야 산맥의 3000m 고지에 자생하는 감송향 뿌리에서 뽑아낸 값비싼 향유이다.

네덜란드 화가 디에릭 보우츠가 1440년 그린 ‘시몬의 집의 그리스도’. 시몬의 집에서 잔치를 할 때에 마리아가 나드향유를 예수님 발에 발라드리고 있다.

당시 로마나 히브리인들은 귀한 손님이 오면 값비싼 향유를 머리에 붓는 풍습이 있었다.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 안에 깃든 일곱 마귀를 쫓아내고 제자로 삼아주셨다. 그 감사함을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긴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아드렸다. 또 그 발에 입을 맞추고 귀한 나드 향유를 발라드렸다.

우슬초는 마조람이라는 다년초다. 박하같이 상쾌하면서도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살균과 소독, 보존작용이 있어 정화에 많이 활용했다. 지금도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 돌 틈에, 키가 작은 품종의 마조람이 피고 있다. 마조람은 말려 두면 10년이 지나도 향기나 약효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마조람은 진정작용과 최면효과도 뛰어나다. 차를 달여 먹으면 소화기능을 촉진하고 뱃멀미를 예방할 수도 있다.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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