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마다 평화통일 기도 이 노병의 마지막 소원”

‘백마고지 전투’ 참전 양승순 원로목사

양승순 원로목사가 20일 6·25전쟁 당시 혈전을 거듭한 끝에 중공군과 싸워 승리한 백마고지전투를 증언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천=강민석 선임기자

우리 나이로 88세. 올해 미수(米壽)인 양승순(수원 영화감리교회 원로) 목사는 6·25전쟁 69주년을 앞두고 한동안 감회에 젖었다. 전쟁터에서 함께 싸우다 죽은 동료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했다.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에 가야 한다는 양 목사를 20일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의 자택에서 만났다.

양 목사가 6·25전쟁에 참여한 것은 1951년 3월 2일 강화 농업중학교 4학년 때다.

“1·4후퇴 때 피란 갔다가 제주도 훈련소에 자원입대했어요. 학교 공부하는 것보다 나라 위해 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도 후회는 없습니다.”

군사훈련을 받고 두 달 뒤 한국군 보병 제9사단에 배치됐다. 그런데 아뿔싸. 자대 배치 첫날부터 중공군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총알이 빗발쳤고 급기야 사단이 포위됐다. 강원도 인제에서 평창으로 후퇴하고 양구군 방산면 현리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밧줄을 타고 한탄강도 건넜다. 양 목사는 느렸지만 또렷하게 증언을 이어갔다.

“제가 크리스천이지만 총을 쏘고 적을 물리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성경에도 불가피하게 전쟁하는 때가 있잖아요. 남침한 북한군을 물리쳐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지요. 하지만 어제 함께 대화를 나눈 동료가 싸늘한 시체로 변할 땐 정말 힘들었어요. 피비린내가 진동했지요.”

백마고지 탈환 후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9사단 병사들. 철원군청 제공

이야기가 멈췄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자신이 속한 9사단이 강원도 철원에 진지를 구축한 뒤 ‘백마고지 전투’를 벌였다고 했다.

“말도 마요.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곳이 이 전투일 겁니다. 한국군 9사단과 중공군 제38군 3개 사단이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3㎞ 북쪽에 있는 무명의 작은 고지를 놓고 혈전을 벌였어요. 백마산 정상에 꽂힌 깃발이 24번이나 바뀌고, 계속되는 폭격으로 산봉우리가 사라질 정도였습니다.”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백마고지 전경. 철원군청 제공

전투는 휴전 회담이 난항을 겪고 있던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계속됐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제38군은 총 9개 연대 중 7개 연대를 투입했는데, 그중 1만여명이 전사와 부상 또는 포로가 된 것으로 집계됐다. 국군 제9사단도 350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 전투의 승리로 9사단은 ‘상승 백마’라는 칭호를 얻었다. 9사단은 1966년 5월 맹호부대에 이어 파월부대로 선정됐고 그해 8월 월남으로 이동, 닌호아·투이호아·캄란지역에서 부여된 작전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전쟁 도중 부상을 입었다. 군 트럭을 타고 가다 전복되는 바람에 넓적다리를 다쳤다. 트럭 뒷바퀴에 깔린 것이다. 군 병원으로 후송돼 6개월간 치료받았다. 지금도 다친 부위가 시큰거린다.

그는 전투 중에 목회자의 길을 결심했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가면 목회하겠다고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드린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몰라 살려달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외삼촌이 성공회 신부였고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큰누나를 따라 교회에 다녔습니다. 전투 중에 시간 날 때마다 배낭에서 성경을 꺼내봤어요. 두려울 땐 찬송을 힘차게 부르고 예수 믿는 동료들과 기도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기도의 힘으로 전쟁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3년 6개월을 군복무하고 1954년 8월 제대한 그는 이듬해 감리교신학대에 들어갔다. 전쟁 중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한 벌밖에 없는 양복이 다 떨어지도록 입는 열악한 현실인데도 목회는 흥미로웠다.

“전투할 때 밥을 저울에 달아줬어요. 식량이 부족했지요. 걷다가 발이 아파 힘들어 쓰러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후퇴와 전진을 거듭하고요. 그러니 한번 생각해봐요. 암탉이 알을 품듯 평안한 목회 생활이 얼마나 신나고 재밌었겠어요.”

큰 어려움을 겪어서인지 남의 고통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은퇴한 지금도 도움받은 후배 목회자들이 그를 찾아 감사 인사를 전한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려서일까. 양 목사는 합덕중앙교회와 삼척제일교회 횡성교회 수원영화교회 등 부임지마다 교회를 부흥시켰다. 교회 22개를 개척했다.

목회 45년을 하고 2002년 은퇴한 그는 국내외 선교활동에 열심이다. 아프리카에 교회도 개척했다. 목회에 대해 아쉬움이 남았고 목회자는 죽을 때까지 사명자라고 했다. 최근 중국 선양에도 교회를 개척했다. 통일을 위해, 북한 선교를 위해 중국 선교가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전투 참가자비에 새겨져 있는 양 목사의 이름. 부천=강민석 선임기자

“북한이 중국과 교류가 많잖아요. 중국 조선족 크리스천들이 북한에 복음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서울 종로에서 원로목사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후임 목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함이다. 국가유공자 연금을 받고 있다. 후배 장병에게 백마고지 전투에 대해 강연한다. 새벽마다 이 나라와 평화통일, 북한 복음화를 위해 기도한다는 그는 남북한 정부에 당부하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남북한이 화해하고 함께 잘 살도록 힘써 주십시오. 통일 못 시키고 제대한 이 노병(老兵)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부천=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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