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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과 여자 살인자들

20세기 초 미국 앨라배마 출신의 내니 도스는 20년에 걸쳐 11명을 살해했다. 희생자 중에는 네 명의 남편과 시어머니, 자신의 엄마와 손자가 포함됐다. 살인 행각은 네 번째 남편의 시신에서 성인 남자 18명을 죽이고도 남을 독극물이 검출되면서 들통났다. 쥐약이었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의 베나르 집안도 줄초상을 치렀다. 처음에는 두 명의 고모할머니가, 이어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시누이, 남편의 사촌동생 2명, 마지막으로는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모두 마리 베나르와 결혼한 뒤 벌어진 일이다. 경찰은 마리의 주변에서 13명이 죽어 나가고서야 부검을 실시했다. 남편 시신에서는 다량의 비소가 검출됐다.

19세기 미국 뉴저지주의 리디아 셔먼은 남편 3명과 친자식 6명, 의붓자식 2명을 독살했다. 실직한 남편을 비소 넣은 죽으로 처리한 리디아는 남겨진 아이들도 차례로 독살했다. 페인트공으로 취직한 큰아들은 병이 나자 딱 1주일을 기다렸다가 비소 차를 먹여 살해했다. 그녀는 두 번 더 결혼했다. 한 명은 그녀가 만들어준 조개수프, 나머지는 핫초코를 먹고 쓰러졌다.

텍사스주의 베티 루 비츠는 1983년 다섯 번째 남편을 총으로 살해한 뒤 암매장했다가 덜미가 잡혔다. 마당에서는 네 번째 남편의 부패한 시신이 발견됐다. 두 번째, 세 번째 남편을 대상으로 한 살인미수도 드러났다. 1986년 남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블란치 무어는 남편 2명과 시어머니, 아버지를 죽인 혐의를 함께 받았다.

200년 미국 역사에 기록된 여자 연쇄살인범은 64명이다. 남자 살인범 416명의 15%에 불과하다. 이런 희소성은 되레 대중을 매료시켜 왔다. 연구자들이 밝혀낸 평균의 프로필도 예상 밖이었다. 다수는 중산층 이상 부유한 집안 출신에 교육 수준이 꽤 높았다. 좀도둑, 사기꾼이 많은 남성 연쇄살인범과 다른 지점이다. 무엇보다 여자 킬러들은 영리하고, 용의주도하고, 인내심이 많았다. 심지어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결혼도 여러 차례 했다. 이들은 최대 7회까지 결혼을 반복했다. 그렇게 수집한 남편들은 고스란히 피해자가 됐다. 남편 이외에는 친자식·친부모 등 가족이 주 타깃이었다. 범행 기간이 길고 피해자가 많다는 것 역시 여자 살인범들의 특징이다. 보통 10~15년에 걸쳐 6~13명을 살해했다.

남녀는 범행 방식과 동기면에서도 확연히 달랐다. 남자 연쇄살인범들은 성적 공격이 첫 번째 목표였다. 성폭행 후 살인, 시신 훼손으로 이어지는 극단적인 잔혹 행위는 남성의 전유물이다. 반면 여성은 보험금 등 돈을 노린 경우가 많다. 첫 남편의 유산을 상속받아 부유한 ‘돌싱’이 되고, 이를 무기로 둘째와 셋째 남편을 고르는 식이다. 도구도 흉기 대신 독극물을 선호한다. 자연사를 가장하기 때문에 시신 훼손은 드물다.

지난 수십년간 연구자들은 인구의 1%로 추정되는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표식을 찾아왔다. 유전자를 분석하고, 뇌영상을 찍고, 성장배경을 조사해 왔다. 누가, 왜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아동학대와 머리 부상, 위축된 뇌활동 등 다양한 가설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어느 것도 학계의 폭넓은 동의를 얻지는 못했다. 현재 결론은 “모른다”에 가깝다. 성적 동기가 특정되는 남성과 달리 동기도 모호한 여성에 대해서는 더욱 아는 게 없다.

최근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고유정 사건으로 세상이 술렁였다. 그녀의 평온한 얼굴과 전해진 범행수법 간 간극이 커서 궁금해졌다. 대체 저런 수준의 잔혹함은 어디서 왔을까. 실망스럽게도 잔인함의 뿌리를 우리는 모른다. 그들의 행동이 생물학적 고장인지, 단순 오작동인지, 혹은 인간 본성의 한쪽 극단인지. 그것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모르니 방법이 없다. 피할 도리도 없다. 고유정 같은 사람 옆에서 살아날 묘수 같은 건 애초 없었다고 단언해도 좋다. 원인도 대책도 없는, 예측도 예방도 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악이라니.

이영미 온라인뉴스부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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