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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보다 고추밭? 권사님 위해 고춧대를 뽑아 버리다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의 전도, 너무 쉽습니다 <7>

부산 세계로교회에서 2017년 4월 열린 임직감사예배에서 장로 권사 집사 임직자들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세계로교회 제공

초창기 기도·전도 사역이 사소한 일에 발목 잡히는 사례가 많았다. 어느 해 임직식을 마치고 직분자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세상에서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직분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니 새벽예배에 꼭 나와서 저와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지금도 그렇지만 교회는 부산의 끄트머리 마을인 데다 김해와 진해의 경계선에 있었다. 게다가 그린벨트 지역이라 주변에 집도 없었다. 당연히 교통편이 좋지 않아 연로하신 권사님들이 새벽예배에 나온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권사 임직자 중 절반 정도만 나왔다.

새벽예배에 나오지 않는 모 권사님께 권면했다. “새벽예배 나오셔야죠.” “목사님 바빠서예.” “뭐가 그렇게 바쁘십니까.” “아들이 주차장을 하는데, 제가 그 일을 도와야 합니더.” “그 일은 아들이 알아서 하도록 하시고 권사님은 교회에 와서 기도하십시오.” “그래도 일이 너무 많아서….”

하도 바쁘다고 하니 도대체 뭐가 그리 바쁜지 궁금해졌다. 성도들에게 물어봤다. “가보시면 알겠지만, 그 권사님이 고추 농사를 엄청 짓습니더. 얼매나 지극 정성으로 짓는지, 아마 이 근방에서 최고일 낍니더.”

다시 권사님을 불렀다. “권사님, 고추밭엔 날마다 가신다면서요. 고추가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아이고 마. 목사님예. 아이들은 농사 짓지 말라고 합니더. 하지만 제가 아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머 있겠습니꺼. 고춧가루 만들어주는 기 제 낙입니더.” “하나님 일에는 관심도 없고 자녀들에게만 관심이 있습니까.” 아무리 설득해도 통하지 않았다.

날마다 권사님을 위해 기도하는데, 주께서 이런 생각을 주셨다. ‘네가 진짜 나의 종이라면 그 권사를 그대로 두면 안 된다. 고추를 모두 뽑아버려라.’ 하도 권사님의 고추밭에 신경 쓰다 보니 그런 마음이 드는 줄 알았다. 그런데 기도할수록 그게 아니었다.

더운 늦여름 어느 날 권사님의 고추밭을 찾아갔다. 정말 소문대로 고추 농사가 잘되고 있었다. 옆에 있는 고추밭과 비교할 때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아, 이 고추밭을 없애야겠구나.’

농사짓는 장로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농약과 제초기를 부탁했다. 뭔가 낌새가 이상했는지 장로님이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근방에 사는 집사님 댁에 가서 낫을 하나 빌렸다.

고춧대를 얼마나 단단하게 세우고 줄로 꽁꽁 묶어놨는지 낫으로 베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웃통을 벗고 고춧대를 손으로 뽑기 시작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물집이 잡혔다. 땀이 비 오듯 해서 더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분의 1 정도를 남겨두고 집에 돌아왔다. 돌아가는 길에 권사님 딸에게 전화했다. “집사님, 누가 고추를 뽑았냐고 물으면 제가 했다고 하십시오.”

권사님이 주차장에 갔다가 고추밭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나하고 원수진 놈이 한 게 분명하데이.’ 기운을 차리고 실성한 사람처럼 동네 이웃에게 다니며 물었다. “누가 우리 고추밭 뽑은 거 봤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누가 우리 고추밭에 들어와 다 뽑아놨다. 니는 누가 그랬는지 아나.” 얼마나 흥분했는지 말까지 더듬었다. 딸은 겁이 나서 엉겁결에 모른다고 했다.

딸이 도저히 안 되겠는지 밤 9시가 돼 전화했다. “목사님, 아무래도 오늘 밤에 큰일이 날 것 같습니다.” 승합차를 타고 권사님 집으로 갔다. 권사님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았다.

“권사님.” 목사가 들어갔는데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정신이 없습니까.” “어떤 죽일 놈이 우리 고추밭을 다 뽑았습니더.” “권사님, 제가 했습니다.” “아이고, 그런 말씀 마십시오. 목사님이 와 우리 고추밭에 손을 댑니꺼.” “권사님 제 손을 좀 보십시오. 죄다 뽑으려고 하다가 덥고 해서 조금 남겨놨습니다.” 내 손을 보더니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목사님이 와 고추를 뽑습니까.”

“권사님은 수십 년 전 예수님을 믿고 이제 권사까지 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감격한 적이 있습니까. 권사님은 지금 고추밭 때문에 심장이 떨리고 치가 떨려서 말을 못 한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다가 죽을 영혼이 복음을 받아들여 너무 좋아 심장이 떨린 적이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옆 사람이 지옥에 가는 게 너무나 안타까워서 오늘처럼 떨린 적이 있습니까.”

권사님이 가만히 눈을 감더니 7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털썩 꿇었다. “목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더. 이 고추가 머라꼬. 지금까지 이렇게 온갖 정성을 쏟았는지 모르겠습니더.”

그 시간 하나님께서 권사님의 마음을 만지셔서 비로소 뭔가 중요한지 깨닫게 하셨다. 진심으로 권사님을 위로해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주일 새벽 권사님이 새벽기도에 나왔다. 그런데 교회 나온 지 3개월밖에 되지 않는 성도도 보였다. “아니, 어떻게 새신자가 새벽기도까지 나오시게 됐습니까.” “목사님, 지도 권사님 밭 옆에 고추를 심어놨는데요. 고추가 모두 뽑혔다는 소문을 듣고 나오게 됐심더.”

그날 이후 권사님은 식혜를 만들어 페트병에 담아 다니면서 전도를 했다. 전도에 은사가 없다고, 전도는 젊은 사람이나 사업하는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고 치부했던 권사님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정성 들인 고추밭이 뽑힌 그날 밤 회개했다. 비록 고추는 대부분 뽑혔지만, 그때부터 복음 전도자가 됐다. 그해 12월 권사님이 전도해서 세례받은 영혼이 11명이나 됐다.

▒ 전도를 위한 대화 이렇게
불교엔 구도는 있지만 구원은 없다


전도자: 세상에는 종교적으로 볼 때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하신 대로 메시아로 오셨고 우리 죄의 빚을 갚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란 예수님을 4대 성인 중의 한 분으론 인정하지만, 자신의 구원자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포함합니다. 김 선생님, 혹시 4대 성인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대상자1: 예수님, 공자님, 부처님, 소크라테스 아닙니까.

전도자: 대단하십니다. 누가 가르쳐주시던가요.

대상자1: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전도자: 그럼 성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대상자1: 인류가 본받을만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아닐까요.

전도자: 그렇지요. 한마디로 말해 훌륭한 분들이라는 말씀이죠.

대상자1: 네.

전도자: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는 제가 볼 때도 성인인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한 분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석가모니는 마야왕국의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장례 행렬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왜 늙고 병들고 고통을 당하다가 죽는가.’ 그래서 그는 왕궁을 나와 도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힌두교에서 하는 것처럼 육체를 고통스럽게 함으로써 구원을 얻고 도를 깨우치려 했지만 이런 것을 통해서는 도를 깨우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힌두교에서 뛰쳐나갔습니다. 그래서 힌두교로부터 이단이라고 배척받게 됐습니다.

그가 깨달은 것은 인생의 108번뇌는 다 욕심으로부터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버리다 보면 나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는 때가 오고 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무아는 ‘나 자신도 없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니르바나, 즉 열반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이런 사실을 깨닫고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다 주는 욕심을 버리고 살기를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믿으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제자들이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 어떻게 됩니까”라고 물었을 때 “내가 살아서의 일도 모르는데 죽고 난 다음의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라고 대답했습니다.

만행 스님의 책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에도 나와 있듯이 석가모니는 제자 목련에게 “나는 도를 찾아가는 구도자이지 구원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예언자나 신의 메신저라고 불리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석가모니는 숨을 거두기 직전 “모든 사물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수행하라”고 말했습니다.

불교는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무의 세계입니다. 석가모니는 심지어 윤회설조차 부정했습니다. 윤회설의 교리는 원래 힌두교의 교리입니다. 윤회설이란 전생에 죄를 지으면 낮은 계급(카스트)에 태어나고 전생에 선을 행하면 높은 계급에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석가가 살았던 사회는 카스트제도가 모든 것을 결정했습니다. 사회생활도, 결혼도 오직 카스트에 의해 결정됐습니다. 높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은 전생에 선을 행해 높은 카스트에 태어났기 때문에 낮은 카스트의 사람을 도와주기보다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했습니다.

반면 낮은 카스트(천민)의 사람들은 죽고 난 다음 더 좋은 신분으로 태어나기 위해 “지금 자신이 속한 카스트에 불평하지 않고 만족하며 어떤 수치와 모욕도 받아들이고 순응할 때 더 좋은 신분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교리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석가가 볼 때 이 카스트 제도는 권력을 가진 자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이었습니다. 카스트 제도에 의해 신분은 고착화되고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이 됐습니다. 석가모니는 카스트 제도를 인간이 만든 제도 중 가장 사악한 제도라고 선언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윤회설을 부정했습니다.

윤회설을 주장하는 이상 카스트 제도가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가 윤회설을 부정하자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영혼은 어떻게 됩니까.”(계속)

손현보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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