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에움길’의 한 장면. 영화사 그램 제공

“우리 할머니들이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일본 놈에게 당한 걸 말하는데…. 왜 사죄를 안 합니까. 우리는 사죄를 꼭 받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다 죽는다 해도 (일본은) 이 문제를 꼭 해명해야 합니다.”

이옥선(92) 할머니는 힘겹게 한마디 한마디를 뱉어냈다. 열다섯 나이에 일본군에게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었던 기억들이 스친 듯, 순간 울컥한 것이다.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도 가슴속 울분은 조금도 씻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이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을 찾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 ‘에움길’을 언론에 처음 소개하는 자리였다. 내레이션을 맡기도 한 그는 “이 영화를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봤으면 좋겠다. 우리 역사를 여러분이 널리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20일 개봉한 ‘에움길’은 나눔의 집에서 공동생활을 해 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소박한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2000년대 초부터 약 20년간 촬영된 1600여개의 영상 자료들을 추려 76분 분량으로 담아냈다. 위안부 극영화 ‘귀향’(2016)에서 착한 일본군 다나카 역을 맡았던 배우 이승현이 연출을 맡았다.


‘귀향’을 계기로 나눔의 집과 인연을 맺은 이승현 감독은 나눔의 집 측으로부터 영상 자료들을 전달받고 다큐멘터리 제작을 결심했다. 그는 “영상을 보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영상 속 할머니들이 너무도 혈기왕성하고 정겹더라”면서 “막연히 상상했던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그렇게 할머니들에게 빠지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영상 디지털 복원 작업을 시작으로 2017년 4월부터 5개월간 추가 촬영과 인터뷰를 진행해 영화를 완성했다. 편집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한 건 할머니들의 밝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이 감독은 “피해 사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할머니들의 사랑스러운 일상을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에움길’에는 할머니들의 소박하고 정다운 매일의 풍경들이 정성스럽게 담겨있다. 소녀처럼 설레는 표정으로 나들이를 가고, 한데 둘러앉아 노래하며 춤을 추고…. 나눔의 집의 안신권 소장은 “영화에 등장하는 서른 분의 할머니들 가운데 현재까지 생존해 계신 분은 단 네 분”이라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이 상영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