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같은 학교의 한 부모 가정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한 적이 있다. 나와 맺어진 K는 조선 중기의 유명한 장군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남자 아이였다. 처음 만난 날, 긴장한 K를 위해 목소리의 높낮이를 살려 실감나게 책을 읽어줬다. 듣는지 마는지 표정만 보고는 도무지 K의 속내를 알기 힘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한 달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했다. 나름 애써봐도 잴 수 없는 거리가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봉사 모임에서 어려움을 털어놓으니 다른 분들도 각자의 고충을 말했다. 그들은 나와 다른 이유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아이가 산만해 책을 끝까지 읽어주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딸만 키우다 남자아이를 맡으니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봉사자도 있었다. K는 산만하지도 않고 아들과 동성이라 성별의 다름에서 오는 어려움도 없었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며 나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어느 날 아들과 K를 데리고 짐 캐리 주연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보러 갔다. 걱정과 달리 둘은 스스럼없이 대화했고 극장을 나설 때는 찰싹 붙어 시시덕댈 정도로 친해져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붕어빵 장수를 보더니 K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눈도 잘 맞추지 않던 아이의 변화가 놀라웠다. 아들을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며칠 후 아들이 학교에서 오자마자 부르더니 손에 쥔 것을 내밀었다. 오백원짜리 동전이었다. “형이 쉬는 시간에 와서 줬어.” 불현듯 불안해지며 무턱대고 받은 아들을 나무랐다. 봉사하는 날 만난 K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주고 싶어서요….” 그러고는 한마디 더 했다. 영화 본 날 정말 재미있었다고.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밀려와 말없이 K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봉사를 하고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이중적 잣대가 도사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K가 아닌 내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오백원으로 표현한 진심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나를 반성했다. 올해 K는 성인이 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시구처럼 세상의 편견이 흔들대도 자신만의 꽃을 활짝 피우기를 응원한다.

최주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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