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작가 은유의 신작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청소년 노동 인권의 현주소를 살핀 작품이다. 인터뷰에 응한 한 특성화고 교사는 “(특성화고)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열악한 부분을 최전선에서 만난다”고 말한다. 사진은 2017년 한 시민단체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개최한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강석경씨는 5년 전 아들을 잃었다. 아들 이름은 김동준. 게임 프로그래머가 꿈이었던 동준이는 마이스터고에 진학해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충북 진천 육가공 공장에서 소시지를 포장했다. 하지만 선배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렸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너무 두렵습니다. 내일 난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요?”

강씨는 아들을 떠나보낸 뒤에도 자식의 휴대전화를 해지할 수 없었다. 전화 요금을 계속 냈다. 그런데 3년쯤 지나자 통신사에서 ‘사망자 직권해지’를 시켰다. 아들의 전화번호는 한 몽골 사람에게 넘어갔다. 강씨는 한국어도 모르는 그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다. “이 번호 빨리 반납하세요. 제가 필요해요.” 아마도 강씨는 아들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이 세상에 남겨두고 싶었을 게다. 우린 그가 느끼는 가없는 슬픔의 깊이를 언제쯤,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동준이와 같은 특성화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르포르타주다. 논픽션 작가 은유(48)가 썼다. 저자는 인생의 환절기 같은 시기에 현장실습에 나갔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한 청춘들의 삶을 들려준다. “툭 치면 세상 밖으로 내쳐지는 간당간당한 생(生)”을 다룬 책이자 “그런 삶을 낳는 세상”에 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알지 못하는…’은 한국사회 변두리에 놓인 특성화고 학생의 현실을 다뤘다는 점만으로도 각별한 의미를 띠는 신간이다.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가장 끝에 있는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들이 바라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게 만들어서다.

책에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열악한 삶을 증언하는 9명의 목소리가 차례로 등장한다. 저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에서 구어체로 풀어썼다.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됐는데, 1부는 동준이 이야기다. 동준이의 시점에서 써내려간 글이 들머리를 장식하고, 뒤에는 엄마인 강씨의 사연과 동준이 이모인 강수정씨의 당부가 이어진다. 동준이 사건을 맡은 노무사 김기배씨 인터뷰도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다. 2부에는 ‘김동준들’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다른 듯 같은 아픔을 간직한 특성화고 관련자들의 사연이 한가득 실려 있다.

저자는 현장실습에 나간 아이들이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는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싶었는가를 묻는 과정”을 통해 드러난다고 믿었다. 그는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용하는 모든 일상 영역에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며 “흩어진 사고와 기록을 모아놓으면 공통의 문제점이 보인다”고 썼다. 그러면서 그가 제시한 공통점은 크게 네 가지다. ①적응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현장에 투입됐다. ②기본적인 노동조건이 지켜지지 않았다. ③모두가 꺼리는 일이 최약자인 그들에게 할당됐다. ④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자신의 고통을 공적으로 문제 삼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저자는 이들 공통점이 특성화고 아이들이 처한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드러났는지를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책을 읽으면 특성화고 학생을 향한 한국사회의 비뚤어진 시선을 확인하게 된다. 현장실습생과 관련해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한 대기업이나 학교의 민낯도 마주할 수 있다. 저자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 사람들이 내뱉은 발언 몇 개만 간추려 소개하자면 이렇다.

“특성화고가 장인을 양성한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공돌이 공순이를 만들어내기 위한 또 하나의 장치가 아닌가 싶어요. 왜냐면 그냥은 안 오니까. 말 잘 듣고 돈 조금 줄 수 있는 아이들이 안 오니까 감언이설로 특성화고니 마이스터고니 만들어놓은 건데….”

“이 사회에서 특성화고 아이들에게 노동인권 교육을 일부러 시키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순진하고 멍청하게 개처럼 일하길, 무식하길 바라는 거예요.”

“사회가 좋아지려면 여린 사람들을 존중하고 여린 것들을 섬세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해요. 섬세함을 섬세하게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이미 일상이 폭력화돼 있는 거예요.”

단언컨대 ‘알지 못하는…’은 누가 읽어도 가슴이 뻐근해질 만한 ‘금주의 책’이다. 연민을 자아내려고, 동정을 요구하려고 쓴 작품이 아니다. 시간이 없다면 첫머리를 장식하는, 머리말 성격을 띠는 27쪽 분량의 ‘하루를 살아갈 용기’만이라도 읽어보시길. 여기엔 저자가 이 책을 준비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큰 공부였다”고 소개한 내용이 등장한다.

동준이 엄마는 아들을 잃은 뒤 사람들을 만나면서 불편할 때가 많았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자식을 잃은 슬픔을 보려고 했다. 눈치를 살폈고, 자신들의 자식 이야기는 삼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배려가 아닌 배제”였다. 세상 사람들은 슬픔을 나누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저자는 동준이 엄마를 통해 느낀 바를 이렇게 적어놓았다. “기쁨을 말하듯이 슬픔도 심상하게 말하게 해달라는, 눈물도 일종의 말이라는 그의 요청은 이 슬픔의 시대에 공동체가 익혀야 할 삶의 기술이 아닐까. 기쁨을 나누는 일은 배우지 않아도 사는 데 무리가 없지만, 슬픔을 나누는 일은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강석경씨를 만나면서 알았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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