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영 국립암센터 유전상담클리닉 실장이 지난 19일 한 40대 여성과 가족들을 상대로 유전성 암 상담을 하고 있다. 유전 상담은 가계도 작성과 가족의 암 발병 여부, 발병 연령 체크 등으로 이뤄진다.

가족 중 여럿이 같은 암에 걸리면 유전성 암 조심하고 검진 받아야
유방암 예방 위한 수술 사례 늘어… 린치 증후군, 가족 절반 생명 위협
현재 암 유전자 200개 이상 규명, 특정 유전자 타깃 치료제 개발 활발


#1. 쌍둥이 엄마인 K씨(45)는 2008년과 지난해 각각 왼쪽과 오른쪽 가슴에 유방암이 발견돼 부분 절제 수술을 받았다. 왼쪽 가슴에 생긴 유방암 치료를 끝내고 K씨는 임신을 해 건강한 쌍둥이를 낳았다. 그런데 10년 뒤에 반대편 가슴에 또 유방암이 생긴 것이다.

이번에는 의사 권유로 유방암 유전자인 ‘브라카(BRCA)’ 돌연변이 여부를 확인하고 암 예방 목적으로 난소까지 절제했다. 브라카 유전자 돌연변이를 갖고 있을 경우 난소암 발생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출산을 완료한 터라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한다. K씨는 “다시는 암에 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2. Y씨(35)는 지난 4월 대장암 3기 판정을 받고 수술과 방사선, 항암치료까지 마쳤다. 30대 중반에 암 발병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혈변을 보기 시작해 검사를 받았는데, 대장암이었다. Y씨의 아버지도 50대 이른 나이에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대장암 검진을 꼬박꼬박 받아 오다 최근 몇년간 해외에 체류하면서 검진 시기를 놓쳤다”고 했다.

유전자 검사 결과 유전성 대장암 가능성이 높은 ‘린치 증후군’으로 확인됐다. 주치의는 “린치 증후군은 대를 이어 대장암에 걸릴 확률이 50% 정도여서 검진이나 예방 노력을 게을리할 경우 가족 절반이 암으로 사라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화들짝 놀란 Y씨 형제들은 부랴부랴 대장내시경 검진과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글 싣는 순서

① 꿈의 방사선치료, 양성자 vs 중입자
② 면역치료, 암과의 새로운 전쟁
③ 희소·난치암 환자에게도 희망을
④ 암, 운명을 갈라놓은 유전자
⑤ 로봇, AI가 바꿔놓는 암 치료
⑥ 암 생존자 200만명 시대


K, Y씨 사례는 ‘유전성 암’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암 유전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의 운명까지도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전자 이상으로 생기는 암에 대한 연구가 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 돌연변이를 갖고 있거나 나이가 들면서 특정 장기의 세포에 유전자 이상이 누적돼 암이 되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국립암센터 유전상담클리닉 공선영 실장은 24일 “유전성 암은 가족 중에 여러 명이 동일한 암에 걸리거나 다양한 종류의 암이 발생할 때, 암이 흔히 발병하는 연령대보다 어린 나이에 생길 때 등의 상황에서 의심해 봐야 한다”면서 “유전성 암이 의심되면 그 환자는 물론 가족들까지 유전 상담과 유전자 검사가 권고된다”고 말했다.

유전 상담은 가계도 작성을 기본으로 가족들의 현재 연령과 암 등 질병의 발병 유무, 발병 연령 등을 확인한다. 가계도는 환자 본인을 중심으로 자녀, 형제·자매, 부모(조부모 포함) 등을 살핀다.

김종원 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암 유전자는 현재 200개 이상 규명됐다”면서 “선천적으로 암 유전자를 갖는 경우는 전체 암 환자의 약 10%로 추정되며 나머지는 태어난 후 성장하고 노화가 진행되면서 유전자 변이가 쌓여 암이 되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졸리 효과’로 유전성 유방암 인지도 ↑

대표적 유전성 암으로 유방암과 난소암, 대장암을 꼽을 수 있다. 유방암 발생에는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나이, 방사선, 생활습관, 환경 및 유전적 요인이 관여한다. 이 가운데 유전적 원인에 의한 유방암은 전체 유방암의 5~7%를 차지하며 1년에 1000여명이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2개의 브라카 유전자(BRCA1, BRCA2) 돌연변이가 있으면 유방암뿐 아니라 난소암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한국인유전성유방암연구회에 따르면 BRCA1 유전자 변이를 갖는 여성의 경우 70세까지 유방암 발생 위험이 72.1%, 난소암 위험은 24.6%로 조사됐다. BRCA2 유전자 변이는 유방암과 난소암 발생 위험이 각각 66.3%와 11.1%로 밝혀졌다. 한국 등 동양인의 경우 BRCA1, BRCA2 변이가 반반 정도 되지만 서양인에서는 BRCA1 변이가 더 많은 편이다.

실제 미국 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자신에게 BRCA1 유전자 변이가 있음을 확인하고 암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사전 예방 목적으로 2013년 양쪽 유방, 2015년에는 난소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아 전 세계적으로 ‘브라카 신드롬’을 일으켰다.

‘졸리 효과’로 국내에서도 BRCA 검사와 암 예방 목적의 유방·난소 절제 수술이 점차 느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BRCA 검사는 2010년 578건에서 2017년 5880건으로 10.2배 급증했다. 또 유전성유방암연구회가 국내 병원 25곳을 조사한 결과 유방암에 걸린 BRCA 보인자의 반대편 유방 절제 수술은 2013년 5건에서 2017년 29건으로 5.8배 늘었다. 예방 목적의 난소 절제 수술은 같은 기간 3.6배(2013년 22건→2017년 79건) 증가했다.

한국인유전성유방암 연구 책임자인 김성원 대림성모병원장(전 서울의대 교수)은 “BRCA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유방암에 걸리지 않은 가슴을 절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나 최근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예방수술을 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러 연구에서 예방 목적 유방 절제술은 유방암 위험을 90% 이상 낮추고, 예방적 난소 절제술은 난소암 위험을 97% 이상 줄여줌과 동시에 유방암 위험도 50% 경감시키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면서 “BRCA 유전자를 갖고 있고 가족 중에 유방·난소암으로 사망한 사례가 많다면 예방적 수술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립암센터 공선영 실장도 “자신이 유방암 혹은 난소암을 진단받고 가족·친척에서 1명 이상의 유방·난소암이 있는 경우, 유방·난소암 동시 발병, 40세 이전에 유방암 진단, 양쪽 유방 모두에 암 발병, 유방암과 함께 다른 장기에도 암이 생긴 경우, 남성인데 유방암에 걸린 경우 등은 BRCA 유전자 변이 검사를 꼭 받아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고위험군 기준에 해당될 경우 검사 비용에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가족성 용종증’은 대장암 100%

대장암도 유방암과 함께 가족 단위 발생이 많은 암이다. 대장암 가족력이 있다는 것은 대장암에 취약한 유전적 소인을 물려받은 것일 수 있고 어려서부터 식생활습관을 공유하면서 나타난 결과일 수 있다. MLH1, MSHS2, MSH6, APC 등 6가지 정도가 대장암 관련 유전자다.

유전성 대장암과 연관성이 입증된 질환은 ‘린치 증후군’과 ‘가족성선종성용종증’이다. 각각 전체 대장암의 1~3%, 1% 미만을 차지한다. 두 질환 모두 자녀에게 대장암 유전 확률은 50%다.

국립암센터 대장암센터 차용준 전문의는 “린치 증후군이 있으면 평생 대장암에 걸릴 확률이 30~70%, 가족성선종성용종증은 100%”라면서 “특히 여성이 린치 증후군이라면 대장암뿐 아니라 자궁내막암, 난소암, 위암, 소장암 위험도 높은 만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평소 아무 증상이 없다 하더라도 부모와 자녀, 형제, 조부모, 삼촌, 고모, 조카 등 2차 직계가족 내에 대장암 걸린 사람이 있으면 유전성 대장암과 관련된 유전자 검사를 꼭 받아 변이 유무를 파악하고 있는게 좋다.

차 전문의는 또 “린치 증후군은 대장암의 호발 연령(65~70세)보다 빠른 30~40대, 가족성선종성용종증은 이보다 빠른 10~20대에 대장암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고위험군으로 확인되면 설사 현재 암이 없다 해도 린치 증후군의 경우 20~25세, 가족성용종증은 12~14세부터 1~2년 간격으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으며 암 발병 여부를 체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암 유전자 이상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특정 암에서 특정 유전자를 타깃으로 한 치료제 개발도 활발하다. 폐암 환자의 25%에서 발견되는 ‘EGFR 유전자’, 유방암의 ‘HER2/NEU’ 유전자, 대장암의 ‘K-RAS’ 유전자를 표적으로 한 항암 신약이다. 표적 항암제는 해당 유전자에만 선택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항암제를 쓸 때 나타나는 부작용이 적고 생존율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국립암센터 생물정보분석팀 홍동완 박사는 “최근 여러 개의 암 관련 유전자를 동시에 찾아내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이 도입돼 검사에 드는 시간적·경제적 비용을 줄이고, 개인에게 적합한 맞춤형 항암제 개발과 치료제 선택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NGS검사는 2017년 3월부터 건강보험 급여화(본인부담 50%)됐으며 위암, 폐암, 대장암, 유방암, 난소암, 흑색종(피부암), 기스트(위암의 일종), 뇌척수암, 소아 신경모세포종, 원발성 불명암 10개 암종을 대상으로 적용되고 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