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목선 사태의 파장이 일파만파다. 20일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이 사과했으나 의혹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국방장관의 사퇴, 9·19 군사합의의 폐기, 대통령의 사과, 전면적인 국정조사로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이 안보 붕괴 사건이자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파장의 끝을 알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한다. 과도한 추측, ‘만약에’라는 끝없는 가정, 섣부른 예단과 대응은 금물이다. 정부나 군 당국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사태는 그야말로 꼬일 대로 꼬였다. 한편 꼬일 대로 꼬인 그날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은폐·축소의 의혹을 푸는 열쇠다.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첫째, 내려와서는 안 될 시기, 가장 민감한 시기에 북한 선박이 내려왔다. 작금의 한반도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급박하다. 지난 20일 시진핑 주석은 중국 국가지도자로서 14년 만에 북한을 방문해 1박2일간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오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개막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 러시아 정상과의 연쇄회담을 예정하고 있다. 오는 29, 30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하노이 핵 담판 결렬 이후 한반도 정세에 전환점을 마련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이런 때에 북한 선박이 내려왔다. 그것도 귀순자를 태우고 왔다. 귀순자 문제는 경험적으로 남북관계를 경색시킬 가능성이 높다. 남북 간 상황을 조용하게, 잘 ‘관리’해야만 하는 정부로서 이번 북한의 목선 귀순은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운 사태일 수밖에 없다.

둘째, 소형 목선이 동이 환하게 튼 아침에, 그것도 사람 많은 항구로 유유히 들어왔다. 간첩이나 특수부대였다면 야심한 밤에, 인적이 드문 은밀한 곳으로 침투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군 입장에서 보면 경계 실패를 변명할 순 없겠지만 말 못할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합참의 발표대로 북한 어선이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내려온 것은 올해 들어서만 60차례에 달한다. 빈틈없는 경계의 상징인 육상의 일반전초(GOP) 경계와 해안경계는 질적으로 다르다. 해경, 해군, 육군의 삼중 경계망이 가동되고 있지만 해안을 철통같이 경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찌 되었건 소형 목선은 아군의 경계망을 뚫고 우리 측 해역을 57시간 동안이나 아무런 제지 없이 돌아다녔다.

셋째, 아침에 방파제에 정박했던 터라 그들이 ‘북에서 왔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민간에 알려졌다. 군에서 발견했다면 수사기관의 합동조사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조치하면 되는 일이다. 민간인에게 먼저 알려지면서 정부와 군이 상황의 주도권을 잃어버렸다.

상황을 종합해보면 사건 초기 정부와 군 당국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주변의 이목을 끌지 않도록, 이른바 로키(low-key)로 대응하고자 했을 개연성이 높다. 소형 목선이 입항한 지 이틀 후인 지난 17일 군 발표에 이런 의도가 잘 드러난다. 군은 북 선박이 ‘삼척항 인근’에서 ‘표류’하다 발견된 것처럼 발표했다. 작심하고 귀순하러 온 것이 아니라 표류해서 떠밀려 온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표현이다. 선원 4명 중 2명을 1차 심문 직후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돌려보낸 점, 통일부가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목선을 폐기했다고 발표를 한 것 모두 급박한 한반도 정세, 남북관계를 고려한 대응일 가능성이 높다.

이제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할 때다. 사건의 경위와 군의 경계태세 등 진상을 빠짐없이 밝혀야 한다. 다만 이것이 정쟁으로 치닫거나 본질과는 거리가 먼 9·19 군사합의의 폐기와 같은 주장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경위를 떠나서, 북한의 작은 목선 입항이 주는 파장이 얼마만큼인지 여실히 보았다. 9·19 군사합의는 있을지 모르는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데 그 초점이 있다. 목선 사태를 보며 오히려 9·19 군사합의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나아가 철통같은 경계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도 역설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뀐 이 시대에 자칫 국방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손에 손잡고’ 해안을 지키는 것보다 유사시 강력한 힘으로 응징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국방개혁 2.0이 지향하는 바다.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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